연 매출 9600만원 이하의 중소가맹점의 카드 수수료율이 곧 인하될 전망입니다. 금융위원회와 카드사들은 지난주 비공개 모임을 갖고 최고 3.6%에 달하는 중소 가맹점의 수수료율을 백화점 수준인 2.2~2.4%로 낮추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에 앞서 올 2월에는 재래시장 상인에 대한 카드 수수료율도 연 2.0~2.2%로 일괄 인하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수수료율 인하에 금융당국과 업계 모두 찜찜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수수료율 인하 과정에서 가격 산정의 합리성을 따져 보지는 못하고 `중소가맹점의 수수료율이 백화점 보다 높은 것은 문제`라는 정치권의 지적에 등 떠밀리듯이 수수료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발단이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6일 금융위원회로부터 내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재래시장의 수수료율이 너무 높다는 한 시장 상인의 건의에 대해 "여전히 백화점이 싼(수수료)것은 사실인 모양"이라며 "영세 상인을 위한 배려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중소가맹점 등은 "동종 업종임에도 카드사가 기업의 규모나 협상력에 따라 수수료를 차등 적용하고 있다"며 가맹점 수수료율 적용의 불합리성을 지적해 왔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카드업계는 "수수료율 차이는 협상력의 차이가 아니라 매출 규모에 따른 가맹점의 기여도 등을 반영한 시장경제의 원리"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카드업계는 지난 2년간 세차례나 가맹점 수수료율을 인하해와 또다시 수수료율을 낮출 경우 신용판매의 경우 수익성이 심하게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 카드사 임원은 "신용판매를 할수록 적자가 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가고 있다"며 "무조건적인 수수료 인하가 계속 단행될 경우 현금서비스나 카드론 등 대출사업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고 넋두리하더군요.
수수료 인하로 중소 가맹점들이 얼마나 혜택을 받을지도 의문입니다.
연 매출 9600만원중 50%가 신용카드로 결제된다고 가정하더라도 가맹점 수수료율을 1%를 인하할 때 매월 약 4만원의 혜택이 중소 가맹점에 돌아갑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현행 수수료 체계에서 가맹점 수수료율을 0%로 하더라도 중소가맹점에 돌아가는 혜택은 월 12만원에 그칩니다.
정부도 무조건적인 수수료 인하는 `무리`라는 의견에 동의는 하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도 "무조건 재래시장의 수수료율을 백화점보다 낮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경제논리에 맞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서민 배려" 발언 한마디에 당국이 또다시 수수료 인하에 나서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물론 신용카드 수수료율 문제를 접근하는데 시장논리가 `전가의 보도`는 아닐 것입니다. 또 매월 단 몇 만원의 혜택도 중소 상인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사회적 약자인 영세 중소 상인을 배려한다는 미명 아래 경제논리를 등안시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원칙없는 인기 영합적 포플리즘으로 밖에 볼 수 없고, 오히려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방해하는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집앞 골목까지 진출한 대형 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설자리를 잃어가는 재래시장과 중소 가맹점에게 매월 몇 만원의 카드수수료 혜택을 준다고 해서 이들의 어려운 사정이 나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친서민 정책`이라는 슬로건 아래 여기 저기서 팔만 비트는 정부의 모습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함을 반증하는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