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박호식기자] LG그룹의 지주회사체제가
LG카드(032710) 유동성 위기를 맞아 첫 시험대에 올랐다. 그동안 국내 그룹들은 한 계열사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을 경우 대주주뿐 아니라 다른 계열사까지 동원해 문제를 해결했으나 LG그룹은 지주회사체제에 묶여 LG카드 채권단이 요구하는 "전폭적인 지원"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지주회사체제가 지향하는 원칙을 지켜야 할 것인지, 금융시장 혼란을 막기 위해 그룹이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또 향후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체제 개선과 관련 이번 LG카드 처리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카드지원, "의지부족"vs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는 것"
LG카드 채권단과 LG그룹은 LG카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원을 놓고 치열한 대립각을 형성해왔다. 양측의 대립은 결국 "LG 대주주들이 카드 회생의지를 보이기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을 것인가"로 정리된다.
이 과정에서 채권단은 "LG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고, LG는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LG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계열사간 상호출자를 모두 해소했고 다른 계열사가 지원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며 "카드가 지주회사에서 분리돼 있어 지주회사인 (주)LG도 나설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채권단도 개인대주주들의 (주)LG지분 담배제공이나 채권단이 제공하는 2조원에 대해 구본무 회장이 연대보증을 서라고 요구하는 등 개인대주주에게 초점을 맞췄다.
LG는 그러나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면서 대주주들의 지분을 지주회사로 집중했기 때문에 개인대주주들의 개별회사 지원여력에 한계가 있고, 모든 대주주들의 지분을 내놓으라는 것은 그룹전체 경영권을 내놓으라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대주주인 구본무 회장이야 사실상 전 재산을 내놓았지만 다른 대주주들에게 무조건 재산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체제내에서는 계열사간 출자 등을 금지하고 있다. 또 산업지주회사와 자회사는 금융기관 지분을 보유할 수 없게 돼 있다. 이는 계열사간 부당지원과 산업자본의 금융 지배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LG카드나 LG증권은 LG그룹의 개인대주주들이 대주주이며(LG전자 지분은 내년3월말까지 의무처분) 지주회사와는 분리돼 있다.
◇한 계열사 문제 확산 방지 불구 위기대처 능력 "노출"
그러나 LG카드 문제가 가맹점이나 가입자에게 미치는 영향과 함께 카드채 보유 금융기관의 동반부실 등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상황에서도 대주주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는 점은 우려를 낳고 있다.
향후 LG내 다른 계열사들에 문제가 발생한다해도 이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삼성카드는 지난 5월 유동성 확보를 위해 2000억원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삼성카드는 개인이 대주주인 LG카드와 달리 삼성전자가 56.1%를 보유하고 있으며 삼성전기 22.1%, 삼성물산 9.4%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등으로부터 큰 무리없이 증자를 받을 수 있었다. 반면 LG카드는 증자를 위해 개인대주주들이 기존 지분 일부를 처분하거나 다른 계열사 지분을 처분해 자금을 마련해왔다.
외환카드의 경우 은행이 카드업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에 흡수합병이라는 수단으로 상대적으로 큰 혼란없이 사안을 해결했다.
◇대주주 책임 "관행"-지주회사체제 "원칙" 충돌..정리 필요성 지적
이같은 상황으로 인해 결국 채권단과 LG간에는 "관행과 제도"가 충돌하는 상황으로 확대됐다는 지적이다.
계열사 특히 금융사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대주주 책임을 강하게 요구해왔던 그동안의 관행이 지주회사체제라는 새로운 제도와 충돌한 것이란 설명이다.
이에 따라 관련업계에서는 향후 계속 발생할 이러한 충돌에 대비해 제도적인 평가와 정비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증권연구원 한상범 박사는 "LG카드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 명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 계열사 문제가 다른 계열사로 파급되는 지주회사체제의 강점은 나타났다고 본다"며 "지배구조투명성 차원에서 지주회사 제체 구축은 필요한 일이어서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원칙은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박사는 "향후 많은 곳에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와 별도로 LG내외부에서는 향후 LG카드의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카드업의 속성상 수신기능이 없이 차입이나 채권발행을 통해 자금을 확보해 이를 여신을 통해 운영하는 구조를 갖고 있어 경기침체가 심화되면 언제든지 같은 문제를 노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독자적인 수신기능이 없을 경우, 금융시장이 침체되면 차입금 회수 등 카드의 자금순환에 이상이 발생할 수 있고 이로인해 카드 유동성 문제가 불거질 개연성이 있다.
이 때문에 LG내부에서는 "금융시장 침체 등 외부변수에 의해 영향을 크게 받고 그룹경영권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카드업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모든 사업을 유지하려는 국내 대기업 속성에 대한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