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증권사 지점장은 최고급 승용차를 굴립니다. 그의 소득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외국산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있습니다. 아르마니 양복에 구찌 셔츠, 에르메스 넥타이, 페라가모 구두, 카티에 시계를 착용했습니다. 양말도 버버리입니다.
"고객들 눈 높이에 맞추려면 이 정도 투자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지점장이 번듯해야 고객들이 안심하고 계좌를 튼다는 설명입니다. 지점은 서울 강남지역에 있습니다. 부자들에게 기 죽지 않고, 영업을 하려면 스스로 "부자 무장"을 해야 한다는 얘기 같습니다.
그 지점장은 전세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 소유의 집이 필요없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럴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생활 안정이나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내 집 장만은 필요하다"고 그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월급을 받으면 빚을 갚기 바쁩니다. 인센티브로 목돈을 만지겠다 싶으면 사고(고객의 손실보전 요구)가 터져 메꾸는데 씁니다.
그는 "증권쟁이 생활 20년에 남은 것은 빚 밖에 없다"고 털어 놓습니다. 직원들에게는 "아파트가 두 채고 조그만 빌딩을 하나 가지고 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사실대로 이야기한다면 그를 따를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란 두려움 때문입니다.
"지점장 중에서 자기 소유 집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다. 집 한두채 날려보지 않은 사람을 발견하기 어렵다." 한 증권사 임원의 말입니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규정을 위반하고 직접 투자를 하는 지점장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돈을 벌기도 하고 날리기도 합니다. 사설펀드를 함께 했던 고객 돈을 물어주느라 친인척에게 손을 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당수 증권사 직원들 역시 "폼생폼사" 입니다. 월세 살아도 자가용은 중형 이상으로 뽑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치장과 소비에 특별한 관심을 쏟습니다. 어쩌면 이런 문화가 증권업계의 전통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래서 "증권업계는 거품을 먹고 산다(H증권사 L상무)"는 말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어떤 증권사 임원이 지점장 시절, 직원들의 리베이트를 1년간 지급보류한 적이 있습니다. "리베이트를 줘봐야 룸살롱 매상만 높여줄 것 아니냐"며 그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해 이체시켰습니다. 연말 부부동반 송년회에서 부인들에게 통장을 전달했습니다.
부인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합니다. 몇몇 직원의 경우, 1억원이 넘는 액수가 찍혀있었던 것이죠. 즉석에서 부부싸움이 일어났습니다. 한 부인 왈, "이 인간이 생활비만 빠듯하게 부치더니...그동안 수억원을 어디에 썼어?"
증권업계 종사자들의 "폼생폼사"는 특유의 투자문화 때문으로 보입니다. 일부인지도 모르겠으나, 증권사 사람들은 "한방"에 승부를 보려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소득수준이 적은 업종에서 알부자가 많이 나오는 반면, 증권업계 출신들은 "모 아니면 도"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입니다.
투자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단기 수익만을 좇는 투자 마인드 때문에 우리 증시의 레벨업이 요원하다는 분석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바로잡기 위한 체계적인 투자자 교육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증권업계 일각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우리 투자문화 왜곡의 탓을 일반 투자자들에게만 돌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빚에 쫓겨 "한방"에 골몰하는 증권사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가치투자를 권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 증시가 장기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증권사 직원들이 먼저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측면에서 투자교육은 증권사 직원들에게 더욱 시급한 것이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