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 읽기)경제병리학을 모르면 과학적 투자도 없다

  • 등록 2010-02-09 오후 3:19:27

    수정 2010-02-09 오후 3:19:27

[이데일리 최용식 칼럼니스트] 경제학은 경제를 유기체로 간주한다. 실제로 경제는 우리 인체와 같은 유기체적인 특징을 보인다. 예를 들어, 통화기관과 금융기관은 몸의 혈관계와 비슷하다. 경제 활동 역시 인체의 활동과 거의 유사하다. 그러나 경제체의 기능은 인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유기체로서의 인체가 갖는 장점을 거의 갖추지 못했다.
 
혹시라도 질병에 걸려 건강이 심각한 상태로 진행하면 인체는 체온이 오르거나 숨이 가빠지는 등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증상을 먼저 나타낸다. 질병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얼른 치료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더욱이 인체는 면역력까지 갖춰서 웬만한 질병은 스스로 치료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라는 유기체에는 이런 기능이 없거나 아주 유치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경제는 인체에 비해 질병에 훨씬 취약하다고 해야 한다. 경고기능이나 자각기능도 없고 면역력도 인체에 비해서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경고기능이 없으면 질병은 더 심각한 지경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고, 자각 기능이 없으면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적으로 경제사를 들여다보면 경제적 질병이라고 부를만한 일들이 종종 벌어지곤 했다. 1930년대에 세계경제를 파멸적 위기상황으로 몰아갔던 경제공황은 그런 대표적인 질병이다. 1920년대의 독일과 1980년대의 중남미 각국에서 벌어졌던 천문학적인 인플레이션도 경제 질병의 하나다. 우리나라가 10여 년 전에 겪었던 외환위기 역시 경제 질병의 일종이다. 일본이 19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20년 이상 초장기 경기부진에 시달리는 것 역시 경제 질병에 포함할 수 있다.

그런데 경제학에는 병리학이 없다. 오직 생리학만 존재할 따름이다. 반면에, 경제보다 훨씬 뛰어난 인체의 경우 생리학보다는 병리학이 훨씬 더 발달해 있다.

학문적 심도는 생리학보다 병리학이 훨씬 더 깊다. 그뿐만 아니라, 그 분야도 내과 외과 치과 정신과 등 여럿으로 갈라지며 각 분과는 다시 다양한 세부 분과로 다시 갈라진다. 경제라는 유기체의 기능이 인체에 비해 훨씬 더 열등하다면 경제학에도 당연히 병리학이 발달해 있어야 하지만, 아직은 탄생의 싹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것은 경제학자들이 따져야 할 일이고 장차 이룩해야 할 일이지만, 경제병리학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만 갖추더라도 주식투자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이미 다른 글에서 언급한 바이지만, 연륜이 좀 쌓인 주식 투자자라면 1997년과 2000년과 2008년의 주식시장을 악몽으로 떠올릴 것이다. 1996년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800대를 유지하던 주가지수가 1998년 상반기 말에는 298까지 떨어졌고, 2000년의 경우는 연초에 1000을 넘겼던 주가지수가 연말에 504까지 떨어졌으며, 2007년 10월에는 2000을 돌파했던 주가지수가 불과 1년 뒤인 2008년 11월에 겨우 1000을 지키는 데에 급급했다.

주가지수가 짧은 기간에 큰 폭으로 하락하였으니 주식투자자는 당연히 큰 손실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 이런 비극적인 사태는 왜 일어났을까? 그 이유는 경제 질병이 우리나라 경제를 감염시켰기 때문이었다. 구체적으로, 1997년에는 외환위기라는 중병에 걸렸고, 2000년과 20007년에는 외환위기의 후유증인 트라우마라는 정실질환에 시달렸던 것이다. 이 기회에 트라우마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전쟁이나 천재지변 혹은 자동차 사고나 화재 등을 겪은 사람 중에는 작은 일에도 과민반응을 보이거나 사고 당시의 심리적 충격을 종종 겪거나 그 기억을 결사적으로 회피하려고 함으로써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한다. 불필요한 근심걱정이 비극적인 사태를 불러오는 것이다.
 
실제로 2000년과 2007년의 경우 모든 경제지표는 비교적 호조였으나 근거 없는 경제위기설이 우리 사회를 지배했고, 그 바람에 주가지수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폭락하고 말았다. 전형적인 트라우마 증세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트라우마에 휩쓸리지 않았던 외국인은 주가가 하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충분히 하락한 다음에는 우리 주식을 매수하여 큰 이익을 남겼다. 그 바람에 우리의 막대한 국부가 외국인 손으로 허무하게 넘어가고 말았다.

이 기회에 경제전문가와 언론이 명심할 일이 하나 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경제문제에 관한 한 용어선택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경기후퇴(recession)라는 용어는 두 분기 이상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경우에 사용하고, 경기침체(depression)라는 용어는 2년에 걸쳐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경우에 사용한다.

심지어 1930년대 대공황에 대해서조차 `큰 경기침체(Great Depression)`라는 용어를 사용할 따름이다. 그리고 경기가 심각하게 부진할 경우에는 기껏 경착륙(hard land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경착륙이라는 용어가 우리 귀에는 경기추락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영어의 landing은 안정 혹은 정상화의 뜻을 포함한다.

이처럼 선진국의 경제전문가나 언론은 국내 언론이나 경제전문가들이 흔히 입에 올리는 위기, 붕괴, 괴멸, 파국, 재앙 등과 같은 용어를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경제란 자기 실현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장참여자들이 모두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믿으면 실제로 주가는 떨어지고, 경기가 하강할 것으로 믿으면 경기는 실제로 하강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용어가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끄는 것은 사실이다. 선진국 전문가나 언론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지만 이런 자극적인 용어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지(사회지도층의 의무)를 솔선수범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경제 질병들이 왜 발생하는가, 그 전개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등을 알 수만 있다면, 투자 손실을 얼마든지 회피할 수 있다. 아니, 외국인 투자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히려 큰 이익을 올릴 수도 있다. 그럼 경제 질병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경제 질병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원인이 오직 하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경제 질병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 그것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는 비교적 쉽게 미리 읽어낼 수 있다. 그럼 그 원인은 무엇일까? 경제병리학에 대해 지난 수십 년 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필자는 그 원인이 `경기과열`이라고 단언한다. 물론 다른 원인들도 있겠지만 내 판단으로는 `경기과열`이 가장 결정적이라고 본다.

그럼 경기과열은 왜 나타날까? 그것은 지난주의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수요의 시간이동` 때문이다. 미래의 수요가 현재로 이동해옴으로써 주식과 부동산 등의 가격이 폭등하고, 이것이 국내 수요를 팽창시켜 수입을 증가시키고 국제수지를 악화시킴으로써 외환보유고를 고갈시키거나 물가상승의 악순환을 초래해 초 인플레이션을 부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통화의 신용창조이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화폐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통화가 창조되어 경제에 유통되는 것이다. 또한 경기가 호조이면 통화의 유통속도가 빨라짐과 동시에 부동산과 주식의 통화기능이 향상되고 그 금액이 크게 증가하여 통화를 더 비약적으로 늘리곤 한다. 이에 따라 경기의 상승은 더욱 빨라지고 결국은 경기를 과열시키고 만다.

그러나 이것은 지속가능한 일이 아니다. 미래의 수요가 현재로 이동해오면 언젠가는 수요가 공동화된 때가 닥치기 때문이다. 수요가 공동화되면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은 다시 하락으로 돌아서고, 이에 따라 통화의 기능과 그 금액이 크게 감소하고 통화의 유통속도까지 느려지면서 경기는 하강으로 돌아서곤 한다.
 
자칫 대공황과 같은 사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런 때에는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그 가격이 더욱 폭락하여 투자자에게 파국적인 손실을 안긴다. 현명한 주식투자자라면 이런 병리적인 현상을 꼭 명심할 일이다.

최근 그리스와 스페인이 경제위기에 직면하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의 주가지수를 큰 폭으로 하락시켰다. 그러나 경제병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 후유증으로 빚어낸 트라우마에 불과하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심리적으로는 클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그리스의 경제위기는 모기에 쏘인 정도이고, 스페인의 경제위기는 벌에 쏘인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정도라면 세계 경제가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트라우마가 의외로 확산되면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최용식 새빛인베스트먼트 리서치센터장>

* 최용식 센터장이 `환율전쟁` 출간을 기념해 10일 저녁 7시30분 역삼동 새빛증권아카데미(www.assetclass.co.kr)에서 `향후 한국 경제와 환율시장 전망`을 주제로 무료강좌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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