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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 철산동 철산센트럴푸르지오(798가구) 아파트 입주민들이 뿔 났다. 아파트 색깔 때문이다. 내년 3월부터 입주하는 아파트인데 애초 예상했던 색(色)과 전혀 다른 색으로 지어지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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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지오를 대표하는 색상은 검녹색이다. 지난 2019년3월 대우건설이 16년 만에 자사 브랜드인 ‘푸르지오’ 브랜드아이덴티티(BI)를 새 단장하면서 색 역시 검녹색으로 바꿨다. 일명 Black is the New Green’으로 더 깊은 차원의 프리미엄 아파트를 표현한다고 홍보도 했다.기존 푸르지오의 초록색 색상에 고급스러운 검은색 잉크 한 방울을 떨어진 듯한 ‘브리티시 그린’ 색상으로 고급화했다.
철산센트럴푸르지오 입주 예정인 조합원과 일반 분양자들의 마음도 한 번에 휘어잡았다. 2018년7월 분양 당시에는 갈색 계통의 색상이었지만 청약자들은 새 브랜드 색상을 적용하길 요구했고 건설사에서도 승인했다는 게 입주민들의 이야기다.
입주민인 김 모(38)씨는 “아파트의 품격을 높이는 듯한 대우건설의 새 BI 색상이 시공사 선정에 큰 역할을 했다”면서 “그런데 막상 다 지어진 아파트를 보니 색이 전혀 달라 속상하다”고 했다.
색깔논란은 처음 갈색 계통 색상에서 예비입주자들이 새 BI 색채인 검녹색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해 건설사 측에서는 이를 받아들였다. 다만 시에서 인가가 나지 않자 건설사는 이를 조합에 알렸고 조합장은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 이 내용을 올렸다. 그러나 예비입주자들은 제대로 알리지 않은 조합장에 그 책임이 있다는 입장으로 조합장과 일반분양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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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일일까. 건설사에서도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새 BI인데 왜 적용을 못한걸까. 취재 결과 그 이유는 ‘경관법’에 있었다.
경관법은 국토 경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든 2007년11월 만든 법이다. 이를 통해 아름답고 쾌적한, 지역특성을 반영한 경관 조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 취지다. 경관법에 따라 경관계획이 5년마다 정해지고 건설사 등이 아파트 색채 등을 결정할 때는 경관위원회 심의를 거쳐 해당 지자체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광명시청 관계자는 “지난 2014년 만들어진 경관계획에 의해 권역별로 쓸 수 있는 색채가 따로 있다”며 “광명은 4개 지역으로 나눠 권역별로 색채를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철산센트럴푸르지오의 BI 색채는 경관계획에 맞지 않는 색이어서 인가받지 못했다”고 했다.
광명시의 경관계획 기본가이드라인을 보면 색채는 ‘자연중심의 색채’를 선호하고 있다. 여기에 통일과 조화를 고려해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큰 그림을 그려놨다. 권역은 4개로 나뉘는데 △원도심재생정비권역 △산업·역사·문화 정비권역 △전원시가지중심권역 △예술문화·유통중심권역이다. 이들 권역별로 색이 모두 다르다.
이를테면 센트럴푸르지오가 있는 철산동과 광명동, 하안동 등 구도심은 빨간색 계열, 소하동은 녹색 계열, 일직동은 노란색 계열 등의 색채만 아파트 외벽에 도색할 수 있다. 센트럴푸르지오가 철산동이 아닌 소하동이 지어졌다면 대우건설의 새 BI가 적용된 색채를 도색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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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경관법에 허점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건축물 심의 때 경관계획이 반영되기 때문에 신규 사업에만 해당된다. 아파트는 신규만 해당되고 기존 준공된 아파트는 예외다. 이 때문에 센트럴푸르지오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준공 후 입주자대표회의체를 꾸려 도색을 새로 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광명시청 관계자는 “경관계획의 한계가 새로 짓는 건축물에는 색채 등을 지정할 수 있는데 기존 건축물의 재도색에 대해서는 따로 규제가 없다”며 “입대의에서 재도색을 하기로 결정한다면 시에서 제재할 수는 없다”고 했다.
반면 기존 건축물도 경관법을 적용해 제재할 방법은 있다는 게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부의 입장이다. 경관법 제28조(건축물의 경관 심의)에 따라 조례로 해당 건축물을 지정하면 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경관법은 큰 틀만 제시한 것이고 세부사항은 각 지자체서 조례를 통해 적용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했기 때문에 기존 건축물도 경관계획에 적용하고자 한다면 조례를 개정해 경관심의를 거칠 수 있게 하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