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체 분석이란 사람의 유전자와 염색체를 분석한 뒤 특정 유전자 또는 염색체가 변이되면 질병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유방암 발병 위험이 높은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유방절제술을 받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서 회장은 지난 1997년 유전자 및 유전체(유전자+염색체) 분석서비스 전문기업인 마크로젠을 설립했다. 그는 “국가연구개발과제를 수행하면서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유전자 분석과 관련한 창업을 제안받았다”며 “창업에 대한 생각은 크지 않았지만 지속적인 연구를 위해서 사업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회사를 설립했다”고 전했다.
설립 초기에는 제약회사나 연구기관들이 필요로 하는 유전자 변형 쥐를 만들어 공급했다. 단순히 유전자 변형 쥐 공급만으로는 회사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느낀 그는 본격적으로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시작해 마크로젠을 국내 최고의 유전자·유전체 분석 서비스 기업으로 변화시켰다. 이후 15년간 꾸준히 축적한 유전자 분석 데이터는 마크로젠의 확실한 경쟁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서 회장은 “현재 우리가 보유한 유전자 분석 데이터는 약 4만명의 기록으로 용량이 17페타바이트(PB)에 이른다”며 “이는 네이버(035420)와 같은 IT(정보기술)업체를 제외하면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1PB는 100만기가바이트(GB)로 DVD 영화(6GB) 17만4000편을 담을 수 있는 용량이다. 마크로젠이 보유한 유전자 정보 데이터 용량은 DVD 영화 295만8000편과 맞먹는 수준이다.
◇외환위기·금융위기로 위기…가격·속도로 유전자 분석시장 장악
창업 초기 제약·의료계에서 치료제 개발 시장이 정체되면서 유전자 변형 쥐 공급으로 인한 매출도 정체됐다. 외환위기로 투자자들이 지분을 정리하는 등 어려움이 가중됐다.
서 회장은 “기존 사업을 대체하기 위해 우수한 유전자 분석 서비스 제공으로 주력사업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가 경쟁력을 내세운 것이 바로 가격과 속도였다.
2000년대 초반 32억쌍에 이르는 염기서열 가운데 염기 1000쌍의 분석비용은 15~20달러 수준이었다. 마크로젠은 이를 5달러에 제공한다는 광고를 세계적인 과학잡지 ‘네이처’에 광고했다. 같은 수준의 분석 결과를 기존의 3분의1 가격이면 얻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유전자 분석 의뢰가 늘어났다.
하지만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는 마크로젠에도 불똥이 튀었다. 서 회장은 “당시 세계적으로 생명과학분야 연구비를 감소하는 추세였다”며 “해외 경쟁업체들도 가격인하에 나서면서 어려움은 가중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제조사들이 다양한 가격·스펙의 제품을 생산하는 것처럼 다양한 형태의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제공했다”며 “영어 일변도였던 고객 대응 체계도 국가별로 대응 체계를 강화해 2012년부터 매출이 다시 늘고 지금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파격적 가격정책으로 2011년 323억원이던 매출(이하 연결기준)은 지난해 795억원까지 늘어났다. 같은 기간 31억원에 불과했던 당기순이익도 지난해 100억원을 넘어섰다.
가격만이 경쟁력은 아니다. 유전자 분석 속도도 최고 수준이다. 동종업계가 2~3주에 걸리는 결과 도출을 마크로젠은 며칠 내로 하고 있다.
서 회장은 “가격과 속도에서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지녀 현재 150개국·1만8000여 연구자들이 우리 회사의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아인 맞춤형 유전체 분석에 매진
서 회장은 지난 2월 아시아인 10만명의 맞춤형 유전체 분석을 진행하는 ‘지놈(Genome) 아시아 100K 이니셔티브’를 연구 프로젝트의 공동 연구대표를 맡았다. 그는 “2003년 유전체 프로젝트가 완성됐지만 이는 서양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며 “이미 동양인과 서양인의 유전자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에 45억 아시아 인구를 대표할 만한 유전체 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크로젠과 같은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서울대, 싱가포르 난양기술대 등 연구기관 등이 2019년까지 1억달러(약 1200억원)를 투자해 아시아인 10만명에 대한 유전체 분석 결과를 임상·의료 정보와 통합해 다양한 질병들에 대한 진단 및 치료 방법을 제시한다는 게 목표다. 특히 아시아인에게 특이적으로 나타나는 희귀질환과 유전질환을 포함해 암·당뇨·심장질환 등 복합 질환의 치료를 위한 임상유전학적 연구 결과를 확보할 계획이다.
서 회장은 “의료 서비스 패러다임이 과거와 달리 진단부터 치료에 이르는 모든 단계를 환자 개인의 유전·환경·생물학적 특성 등을 고려하는 정밀의학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절밀의학의 기초적인 자료가 바로 유전체 분석”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조사업체 BCC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유전체 분석 서비스 시장은 2013년 19억8800만달러(약 2조원)에서 연평균 32%씩 성장해 2018년 74억6500만달러(약 8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미국은 올해 정밀의학을 우선 정책 중 하나로 선정하고 총 2억1500만달러의 예산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과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도 정밀의학 시장 선점을 위해 정부 차원의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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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바이오협회장을 맡고 있는 서 회장은 정부의 바이오산업 지원정책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말로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서 ‘퍼스트 무버(Fist Mover)’로 체질을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제도적인 지원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성공·실패 사례가 있어야 한다”며 “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서 회장이 강조하는 것이 바이오 스타트업 1000개 육성이다. 다양한 스타트업이 생겨나 성공과 실패 과정에서 얻은 교훈으로 바이오 산업화의 단초를 이루고 세계적인 바이오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다는 논리다.
서 회장은 “바이오 분야가 전문영역이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전체 창업의 절반 이상은 의사들이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국립대학부터라도 대학원 교육과정에 창업분야를 포함시키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바이오 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의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 회장은 “현재 바이오산업은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으로 흩어져 있다”며 “바이오 산업은 속도가 가장 중요하지만 우리 정부는 속도를 관리할 수 있는 리더십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바이오 스타트업 1000개 육성을 주장하는 것도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미래 바이오산업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바이오 벤처기업 창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펀드 조성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직원 꿈·회사 비전 모두 달성하는 회사 만들 것”
서 회장은 최근 경영철학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다는 비전은 변함이 없지만 회사 비전을 위해 직원들의 희생만을 강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유전체 분석 서비스를 통해 기존 사회에 없던 서비스를 제공해 사회에 기여한다고만 생각했다”며 “어느날 우리 직원들은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직원들이 급여인상을 요구했을 때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직원들의 요구가 맞았다”며 “결국 좋은 기업이란 회사의 비전과 직원들의 꿈이 겹치면서 일치할 수 있는 회사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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