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 대신 한 쪽에 512g 의족을 달고 뛴다. 하지만 장애인들과 경쟁이 아닌 비장애인들과 경쟁을 선택했다. 생각보다 힘든 선택이었다. 2008년 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결정에 따라 겨우 경쟁을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7월 400m에서 45초07을 기록, 세계선수권 A기준기록인 45초25를 통과했다. 결국 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선수권에 출전하게 됐다. 바로 '블레이드 러너'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남아공) 이야기다.
피스토리우스는 26일 대구 노보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세계선수권 출전이 확정됐을 때) 정말 소용돌이와 같은 시간이었다. 많은 것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고 회상한 뒤 "내 기록은 전체 17~18위 정도다. 결승 진출은 과한 꿈이다. 준결승까지도 좋다. 45초 초반 기록으로 대구에 왔는데 이런 기록만 유지한다면 가능할 것 같다"고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목표를 밝혔다.
말 그래도 메달이 목표가 아니다. 준결승 진출, 더 나아가 개인 최고 기록(45초07) 경신이다. 특히 첫 세계선수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세계선수권 출전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CAS의 결정과 달리 국제육상경기연맹(IAAF)는 피스토리우스에 대해 여전히 비판적이었기 때문이다. 피스토리우스가 의족으로 인해 부당 이익을 받는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1,600m 계주의 경우, 바통 터치 과정 중 충돌이 일어나면 부상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피스토리우스의 출전에 계속해서 거부 반응을 보여왔다.
하지만 피스토리우스는 담담했다. "IAAF의 의견은 존중한다. 하지만 부당 이익을 받는 것은 아니다. 2004년부터 같은 의족을 사용했다.
IAAF와 합의를 통해서만 바꿀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피스토리우스는 "그런 것에 영향을 받으면 마인드 컨트롤이 되지 않아 신경 쓰지 않는다. 카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에게 실력보다 차가 좋아 우승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저 훈련에만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피스토리우스가 세계선수권까지 나설 수 있었던 비결은 오로지 훈련이었다. 2005년부터 400m를 시작한 뒤 비시즌에는 1주에 9~13회, 시즌에는 6회씩 훈련을 한다. 또 2008년 베이징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뒤 겪은 2009년 오토바이 사고도 피스토리우스를 다시 서게 하는 계기가 됐다.
세계선수권 출전이라는 작은 목표를 이룬 피스토리우스는 이제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2012년 런던올림픽이다.
이날 라민 디악 IAAF 회장과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장이 "피스토리우스가 이번 세계육상선수권에 참가한다는 것은 내년 올림픽에도 출전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림픽이나 세계육상대회에 나갈 수 있는 실력만 갖춘다면 문제가 없다"고 말하면서 피스토리우스의 올림픽 출전에 힘을 실어줬다.
피스토리우스는 "대회가 끝나면 유럽으로 이동해 1~2경기를 더 뛰고 남아공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11월부터 훈련을 다시 시작해 내년 6개월 안에 올림픽 A기준기록 통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