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장에서 '저렴한 차' 또는 '가격에 비해 실용적인 차'라는 이미지로 굳어진 현대차의 브랜드를 '고급' 또는 '프리미엄'으로 전환하기 위해 현대차가 준비중인 일련의 프로젝트 가운데 첫 출시작이 바로 고급형 SUV를 표방한 베라크루즈다.
미국시장에서는 '현대차가 고급차도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 내수시장에서는 '그래도 품질은 외제차가 낫지 않을까'하는 고민을 함께 떨쳐버려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 "현대차 이미지에 '프리미엄'을 더하라"
베라크루즈는 국내 시장에 먼저 출시되기는 했지만 개발 초기부터 미국의 고급 SUV 수요를 겨냥해서 만든 전략차종이다. 거칠고 투박한 SUV에 싫증을 느끼면서 '왜 SUV는 고급스러우면 안되는가'하는 질문을 던지는 수요층이 늘고 있다는 점을 파고든 제품이다.
고급 수요층을 염두에 둔 만큼 사양만으로만 보면 렉서스의 Rx350나 BMW의 X5 등 내로라하는 브랜드들의 주력모델과 직접 맞붙어도 될만한 수준으로 구성했다.
베라크루즈는 현대차에서 만든 고급 SUV라는 표면적인 의미 보다는 앞으로 내놓을 프리미엄급 현대차 시리즈의 첫 작품이자 현대차 브랜드 고급화 전략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현대차는 내년 출시를 목표로 에쿠스급 프리미엄 세단 승용차(프로 젝트명 BH)를 개발중이며 2008년에는 최고급 대형 승용차(프로젝트명 VI)를 새로 내놓을 예정이다. 이 차는 에쿠스보다 고급형 차종으로 현대차 브랜드 고급화 시도의 결정판이 될 모델이다. 이 차는 BMW나 벤츠의 럭셔리 세단들과 직접 경쟁하게 된다.
베라크루즈의 출시는 향후 현대차의 브랜드 전략을 어떻게 가져갈 지 결정하는 데 중요한 데이터를 제공할 단서가 되기도 한다.
'고급화'라는 전략에는 재고의 여지가 없지만 브랜드 전략에 대한 고민이다. 도요타가 '값싸고 대중적인 차'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우려해 프리미엄급 차량은 '렉서스'라는 아예 새로운 브랜드로 판매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차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만 새로운 딜러망 구축 등 여러 비용문제를 감안할 때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
결국 베라크루즈를 비롯해 2008년까지 내놓을 서너종의 프리미엄급 전략차종의 시장 반응에 따라 현대차의 브랜드 전략과 방향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베라크루즈의 어깨는 더 무겁다.
◇ "4천만원대 시장은 수입차에 내줄 수 없다"
국내시장에서 베라크루즈의 임무는 '수입차 사냥'이다.
현대차는 수입차와 비교해 뒤지지 않는 품질의 고급차량을 내수시장에 풀어 '조금 더 주고 외제차를 타자'는 3~4천만원대 차량 수요층을 확실히 끌어 안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판매가격도 도전적으로 끌어올렸다. 베라크루즈의 가격만 놓고 본다면 비슷한 분위기의 수입차도 살 수 있는 가격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브랜드 때문에 수입차를 선택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따져보고 고르는 고객이라면 당연히 베라크루즈를 선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욕심이 나는 사양은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다 넣었다"고 말했다. '브랜드 비교'가 아닌 '품질 비교'라면 엔진이나 실내공간, 정숙성과 주행성능면에서 수입차량보다 오히려 낫다는 자체 평가다.
다만 그만한 수요층이 있느냐는 미지수다. 국산차 가운데는 렉스턴이 유일한 경쟁차종이고 수입차 가운데는 가격면에서 혼다 CR-V나 푸조307, 사양면에서는 포드의 프리스타일, 렉서스 RX-350이나 인피니티 FX35 정도지만, 렉서스나 인피니티 모델은 가격이 6천만대 후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직접 경쟁할만한 차종은 아닐수도 있다.
수입차량 가운데 SUV의 연간판매량이 1000대를 넘지 못하고 렉스턴 구매수요를 합쳐도 연간 1만5000대도 안된다. 베라크루즈가 내년부터 내수시장에서 목표치인 2만대를 판매하려면 수요를 새로 만들어내는 수 밖에 없다는 게 또 하나의 숙제다.
다만 경유값 상승으로 유지비와 경제성을 위해 SUV를 선택하는 수요는 대부분 사라졌다고 본다면, 남아있는 SUV 수요는 기능과 성능을 고급화하더라도 차량을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계속 SUV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현대차는 내수시장에서 베라크루즈의 마케팅을 철저하게 수입차와 비교하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현대차 권영국 판매전략실장은 "취향은 고급스럽지만 선택은 합리적인 전문직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라며 "직접 타보고 결정하더라도 전혀 걱정하지 않을만큼 품질을 끌어올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