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전설리기자]
올해 한국영화는 무척 바쁜 한해를 보냈습니다. 관객 1000만 시대를 열었고 해외영화제에서 잇단 수상으로 활짝 웃었습니다. 한류 덕분에 수출시장에 대한 기대도 충만합니다. 그러나 갑작스레 불어닥친 12월의 한파에 연말 한국 영화계의 분위기는 살짝 우울해졌습니다. 산업부 전설리 기자가 전합니다.
여러분은 이번 크리스마스 때 어떤 영화를 보셨나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오페라의 유령`, `인크레더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역도산`?
제가 지금 나열한 영화들은 지난 주 박스오피스 5위권에 랭크됐던 영화들입니다. `역도산` 한편을 제외하고 한 눈에 외화 일색임을 알 수 있지요.
올해 초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로 1000만 관객 시대를 맞이하며 화려하게 포문을 연 이래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잇단 수상과 연일 신문을 장식하는 `욘사마` 열풍으로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냈던 국내 영화계는 연말 우울한 분위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한국 영화가 맥을 못추고 있기 때문이죠.
설경구의 인상적인 연기로 기대를 모으며 연말 외화 홍수 속에서 자존심을 지킬 것이라고 큰 소리 쳤던 `역도산`은 첫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으나 한주만에 외화들에 자리를 내주며 4~5위로 뚝 떨어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올해 지속적으로 50~60%대를 유지하던 한국영화 점유율이 이번 달 20%대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물론 새해 훌륭한 라인업들이 쏟아진다면 한국 영화의 약세는 단기간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달 한국영화 시장에 급작스레 불어닥친 한파는 한국영화 산업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하는 사건을 이뤘지만 한국영화 수익구조는 여전히 위태롭습니다. 올해 영화산업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두 편의 영화에도 불구하고 제작비와 마케팅비 규모가 커지면서 수익률은 전년대비 하락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편당 수지는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고요.
한류에 대한 영화계의 기대감이 지나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부는 한류 열풍이 작품보다는 배우에,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집중돼 있으며 결정적으로 대다수의 영화들이 기대만큼 훌륭한 흥행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태극기 휘날리며`와 `살인의 추억`,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장화 홍련`, `올드보이`, `하류인생` 등이 일본에서 개봉했지만 `욘사마` 열풍에 힘입은 `스캔들`을 제외한 나머지 영화들은 그리 대단한 흥행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스크린쿼터 논란도 영화계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 대사는 "한국 정부와 국민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스크린쿼터 논란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내년에는 스크린쿼터 논쟁이 더욱 커질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인터넷 강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P2P사이트를 통한 불법 다운로드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영화 시장의 위협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불법 다운로드는 관객 3명중 1명을 극장에 덜 가게 만드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불법 다운로드가 영화 및 극장 매출 뿐만 아니라 안 그래도 죽어가는 2차 판권 시장을 초토화 시킬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제가 만난 영화계 한 인사는 "내년에는 올해 음반에 이어 영화 불법 다운로드가 핫 이슈로 떠오를 것"이라고 귀뜸하기도 했습니다.
장밋빛 한 해를 보냈던 한국영화가 내년에도 성장가도를 달리기 위해서는 흔히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일컫는 `대박의 꿈`에서 벗어나 차근차근 주어진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