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100이면 100을 다 만족하는 정책은 없고 결국은 모두가 조금씩 양보해서 근접하는 게 답이 아닌가 생각한다”.
| 올 5월 공매도 부분재개 이후 3개월(5월 3일~8월 2일)간 투자 주체별 공매도 비중과 2019년 같은기간 비중 비교. (단위=%, 자료=한국거래소 KRX정보데이터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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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12월 열린 ‘송년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공매도 제도 개선과 관련해 발언한 내용이다. 당시 금융당국은 공매도 재개에 앞서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 해소를 위해 기관 투자자가 중심인 시장조성자 제도의 보완과 개인 공매도 확대 등을 양대 축으로 한 개선안을 제시했었다. 이후 지난 5월 3일 ‘코스피200’·‘코스닥150’ 등 대형주에 대한 공매도 부분재개와 함께 이들 개선안도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공매도 부분재개 3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모두가 조금씩 양보해 절충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로 변질됐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공매도 거래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육박하며 운동장의 기울기는 한층 가팔라졌다.
한국거래소의 KRX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공매도 부분재개 이후 3개월(5월 3일~8월 2일)간 거래 주체별 거래 비중은 △외국인 78.0% △기관 20.2% △개인 1.7% 등으로 나타났다. 공매도 금지 이전인 2019년 같은기간과 비교하면 외국인의 공매도 거래 비중은 21.1%포인트 증가(56.9%→78.0%)했지만 기관은 22.1%포인트 감소(42.3%→20.2%)해 반토막이 났다. 반면 개인의 공매도 비중은 0.9%포인트 늘어나는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미니코스피200선물·옵션 공매도 금지 등 시장조성자 기능을 대폭 축소해, 기관의 공매도 포지션을 외국인이 가져가는 결과만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이로인해 기관은 주식시장에서 매수(long)와 매도(short)를 동시에 활용해 수익률을 추구하는 ‘롱숏 전략’ 구사가 대폭 제약돼, ‘곱버스’(곱하기 인버스)로 투자가 몰리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지난 7월 마지막 주 기관의 코스피 순매수 상위 1위 종목도 ‘KODEX 200선물인버스2X’가 차지했다.
동학개미들의 공매도에 대한 반발도 관련 개선안 시행 이전보다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특히 공매도 부분재개 이후 외국인의 공매도 거래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올 초 미국에서 벌어진 게임스톱 사태를 모방한 ‘K스톱’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회원수 4만 8000여명 규모의 온라인 커뮤니티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은 지난달 15일
에이치엘비(028300)에 대한 주식 매수 운동을 벌인데 이어, 이달에도 오는 15일 광복절을 전후해 K스톱 운동을 펼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최근 한투연의 K스톱 운동이 ‘집중매수 시점 및 방법을 특정해 매수를 독려하는 행위’에 해당해 자본시장법 위반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그러나 한투연은 금융위가 “공매도 세력을 옹호하고 적법한 시민운동을 억압한다”며 예정대로 K스톱 운동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금융당국이 공매도에 대한 여러 규제를 포함한 개선안을 시행한 이유는 동학개미들이 주장해온 공매도에 의한 ‘주가 하락’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매도 부분재개 3개월이 지났지만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고, 금융당국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기관과 개인에게만 양보를 강요하고, 외국인만 예외인 개선안을 원칙대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