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 걸 그랬어 '껄무새'[이연호의 신조어 나들이]

'물을 들인 천' 뜻하는 '무새', 젊은층은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 중
특정 말을 생각 없이 반복하는 앵무새 특성에서 착안
○무새→'어떤 말이나 행동 반복하는 사람·특정 가치관 집착하는 사람'
  • 등록 2023-01-11 오후 2:13:37

    수정 2023-01-11 오후 2:16:42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편집자 주] 언어의 특성 중 역사성이라는 것이 있다. 언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성, 소멸, 변화의 과정을 겪는 것을 가리켜 바로 ‘언어의 역사성’이라고 한다. 언어의 역사성에 기반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신조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매일같이 넘쳐나는 신조어의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같은 신조어들이 다양한 정보기술(IT) 매체를 통한 소통에 상대적으로 더욱 자유롭고 친숙한 10~20대들에 의해 주로 만들어지다 보니, 그들과 그 윗세대들 간 언어 단절 현상이 초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젊은층들은 새로운 언어를 매우 빠른 속도로 만들어 그들만의 전유물로 삼으며 세대 간 의사소통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기성세대들도 상대적으로 더 어린 세대들의 언어를 접하고 익힘으로써 서로 간의 언어 장벽을 없애 결국엔 원활한 의사소통을 꾀하자는 취지에서 연재물 ‘이연호의 신조어 나들이’를 게재한다.

◎다음 < > 속 짧은 글에서 (_ ) 안에 들어갈 가장 적절한 말은 무엇일까요?

<한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앱) 익명 게시판이다. 한 여성 사용자가 글을 올린다. “전 키가 작아서 키 큰 남자가 좋아요”. 그러자 다른 여성 사용자들의 동조 댓글이 연이어 달린다.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보던 한 남성 사용자가 등장해 다음과 같은 댓글로 쏘아붙인다. “본인이 작아도 커도 그저 키, 키, 키... 이런 키(_)들을 봤나.”>

1)황새 2)뱁새 3)무새 4)촉새

정답은 3번 ‘무새’다.

일단 ‘무새’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물을 들인 천’이라고 나온다. 이 뜻으로는 도저히 저 위의 괄호 속에 들어갈 것이라고 유추할 수 없다.

아무리 신조어라도 웬만하면 어느 정도는 그 뜻을 유추할 수 있을 법 만도 한데, 이번만큼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유래를 알고 보면 ‘아하’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다.

‘무새’는 바로 사람들이 관상용으로 종종 기르는 앵무새라는 새에서 비롯된 신조어다. 앵무새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바로 인간이 한 말을 아무 이유도 없이 뜻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따라하는 것일 테다.

이 같은 앵무새의 특성에 착안해, 맨 앞의 ‘앵’을 뺀 ‘무새’는 바로 어떤 말이나 행동을 반복적으로 자꾸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더 나아가 고지식하게 특정 가치관에 집착하거나 특정 사상을 일관되게 주장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에도 쓰인다. 친한 사이에 농담조로 자주 하는 말이지만 어원상 다소 부정적인 의미일 수 밖에 없고 때론 일종의 비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해당하는 사람의 특정 행동이나 말 등을 ‘무새’ 앞에 붙여 ‘○무새’ 이런 식으로 쓰면 된다. 앞에 어떤 단어나 음절을 붙여도 말이 되기 때문에 MZ세대들을 중심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응용돼 사용 중이다. 위 예시처럼 키에 집착하는 사람을 ‘키무새’, 소개팅·결혼 시장에서 의사만 고집하는 사람을 ‘의무새’,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사람을 ‘미안무새’, ‘~할 걸’이라거나 ‘하지 말 걸’이라며 후회만 하는 사람을 ‘껄(걸)무새’라고 지칭하는 식이다.

지난해 10월 결혼정보업체 ‘노블레스 수현’은 결혼정보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직업적 고충과 삶의 애환을 다룬 웹드마라 ‘죄송해무새’를 제작해 공개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앵무새. 사진=언스플래시(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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