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중국 vs 나이키

  • 등록 2004-12-13 오후 4:52:43

    수정 2004-12-13 오후 4:52:43

[edaily 오상용기자] 지난주 세계적인 스포츠 신발·의류업체인 나이키가 방송광고 때문에 중국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습니다. 중국 정부는 문제의 광고가 국가존엄성을 훼손했다며 방영을 금지시켰고, 나이키도 즉각 공개사과하는 것으로 문제는 일단락됐습니다. 이번 사건을 지켜본 국제부 오상용기자는 수천년 중국인의 삶에 뿌리내린 중화사상(中華思想)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는 기회가 됐다고 합니다. 문제의 나이키 광고는 미 프로농구(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중국 쿵후 고수와 두 마리 용을 무찌르고 승리한다는 게 주요 내용입니다. 중국으로선 나이키가 괘씸할 수 밖에요. 쿵후는 지난 70년대 중국을 세계에 알리는 문화 코드였고, 용(龍)은 중국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영물이니까요. 입장을 바꿔 미국 농구선수가 태권도 고수와 백두산 호랑이를 덩크슛으로 무릎 꿇리는 광고가 우리나라에서 방영됐다면 어땠을까요. 역시 비슷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결국 나이키는 광고방영 금지 처분 나흘만에 중국 주요 일간지를 통해 공개 사과했습니다. 나이키는 "이번 광고는 70년대 홍콩 쿵후 영화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이번 광고로 야기된 모든 불화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유감을 표했습니다. 외국 기업들이 중국의 비위를 거슬렸다가 된서리를 맞은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에는 도요타가 비슷한 곤욕을 치렀죠. 사자석상이 도요타의 SUV차량인 프라도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광고를 내보냈다가 역시 공개사과를 했습니다. 중국 황실을 보호해온 사자석상은 중국 권위의 상징이라죠. 또 나이키 광고 사건에 이어 지난 9일에는 영국 게임업체인 스포츠인터액티브사가 제작한 `풋볼 매니저 2005` 게임이 판매 금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게임이 대만과 홍콩 중국을 각각 독립 국가로 표기해 `하나의 중국 정책`을 위배했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무(無)노조 경영으로 유명한 월마트는 중국 당국의 압력에 노조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했고요. 여하튼 중국은 외국기업들의 콧대를 누르며 승수를 쌓아가고 있군요. 또 `중국에서 돈벌고 싶으면 지킬 것은 지켜라`는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뒷맛이 개운치는 않습니다. 나이키 광고에 분노하는 중국을 이해하면서도 `중국은 과연 지킬 것은 지키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최근 고구려사 왜곡 파문 등 중국의 잘못된 역사 인식 때문인데요. 속된 말로 "중국이 남 욕할 자격이 있느냐"는 거죠. 문화적 자긍심과 민족자존심은 남을 무시해서 얻어지는 게 아닌데 최근 중국의 모습은 해묵은 중화사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중국 문화가 최고이고,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민족우월주의가 중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죠. 이는 중국 역사학계를 통해 더 조장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6일자 신문에서 중국 역사 교과서와 역사 수업은 왜곡과 생략으로 얼룩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중국은 단 한번도 침략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전쟁만 해 온 평화로운 민족이라고 가르친다는 군요. 중국에는 만리장성이 있습니다.진시황제때 처음으로 축조에 들어간 만리장성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는 데는 180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왕조가 거듭되는 동안 중국은 성의 길이를 늘려가며 이민족을 성밖으로 몰아내는데 주력한 것이죠. 21세기 들어 중국은 명실공히 `잘나가는` 나라로 자리잡았습니다. 경제는 연간 9%대의 고속성장세를 이어가고 있고, 13억 인구는 전세계 기업을 중국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영향력도 강화되고 있고요. 그러나 최근 중국의 모습은 외부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동안에도 안으로는 계속 배타적인 만리장성을 쌓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시안월스리트저널은 `중국과 나이키의 승부에서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분석기사를 통해 "중국이 자존심을 지켰을런지는 모르지만, 국가이미지와 신뢰도 개선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성을 쌓은 국가`보다 `길을 놓은 국가`가 결국엔 더 융성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충고로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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