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지금 국내 뮤지컬계에서 가장 주목할 창작자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이들을 꼽고 싶습니다. 작가 박천휴, 작곡가 윌 애런슨입니다. 마니아들에게는 ‘윌휴’라는 별명으로도 친숙한 창작 콤비인데요. 오는 25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폐막하는 뮤지컬 ‘일 테노레’가 바로 이들의 작품입니다.
2012년 첫 뮤지컬 초연…서정적 감성의 작품들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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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콤비의 국내 데뷔작은 2012년 초연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입니다. 배우 이병헌, 고(故) 이은주 주연의 동명 영화가 원작입니다. 영화는 환생과 동성애 등 다소 파격적일 수 있는 소재를 감성적인 멜로로 풀어내 적잖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데요. 뮤지컬은 원작 영화의 감성을 무대만의 표현으로 잘 살려냈습니다. 2018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 세 번째 시즌을 봤는데요. ‘윌휴’ 콤비의 서정적인 감성으로 풀어낸 성공적인 영상의 무대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윌휴’ 콤비가 더욱 유명세를 탄 것은 2016년 초연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을 통해서입니다. 두 창작자가 원작이 아닌 오리지널 이야기로 만든 첫 뮤지컬입니다. 인간을 돕는 로봇 ‘헬퍼봇’을 통해 로봇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의 이야기를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풀어냈습니다. 박천휴 작가는 밴드 블러, 고릴라즈의 리더인 데이먼 알반의 솔로곡 ‘에브리데이 로봇’(Everyday Robots)에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2014년 우란문화재단을 통해 기획, 개발을 시작해 오랜 제작 기간을 거쳐 선보인 ‘어쩌면 해피엔딩’은 소극장 뮤지컬임에도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올해 6월 다섯 번째 시즌 공연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일 테노레’ 연장 공연 확정…신작 ‘고스트 베이커리’도 연말 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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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휴’ 콤비가 ‘일 테노레’를 구상한 건 ‘번지점프를 하다’를 완성하고 난 직후였다고 합니다. ‘일 테노레’의 주인공들처럼 ‘윌휴’ 콤비 또한 그 당시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음에도 세상이 허락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 걱정하던 때였다네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많은 양의 자료를 조사하며 당시 시대와 사람들을 공부했고, 그 속에서 관객에게 공감을 이끌어낼 이야기를 고민하며 스토리를 구성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이선과 진연이 어린 시절 함께 자랐다는 설정을 담은 광범위한 시간대의 이야기였다고 하네요. 그러나 작품의 디테일과 분위기는 유지하되 이야기와 드라마를 좀 더 간결하고 명확하게 수정하면서 현재의 버전이 완성됐다고 합니다.
‘일 테노레’는 오는 25일 폐막한 뒤, 오는 3월 29일부터 5월 19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을 연장공연을 이어갑니다. 대극장으로 옮겨가는 만큼 한층 더 새로운 무대가 예상됩니다. ‘윌휴’ 콤비는 이 작품의 키워드를 ‘꿈의 무게’라고 꼽습니다. “무사히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난폭한 세상에서 꼭 이루고 싶은 개인적인 꿈이 생길 때, 그것의 아름다움과 비극을 동시에 담고 싶었”다네요. 그런 무게에도 꿈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일 테노레’가 전하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윌휴’ 콤비는 오는 6월 ‘어쩌면 해피엔딩’ 재공연에 이어 오는 12월엔 또 다른 신작 ‘고스트 베이커리’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초연합니다. 올해 이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윌휴’ 콤비가 말하는 ‘일 테노레’, 그리고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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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지점프를 하다’, ‘어쩌면 해피엔딩’, ‘일 테노레’ 등 그동안 발표한 뮤지컬을 관통하는 테마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 ‘일 테노레’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유머를 간직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것에 있어 부담은 없었나요?
△(윌 애런슨) 최대한 진중하게 진정성을 갖추고 균형감 있게 그 시대를 그려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그 사명감이 위트와 유머를 없애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인간은아주 고단한 상황 속에서도 웃으려 애쓰니까요. 자료조사를 하며 당시 인물들의 기록 등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가 고통스러운 역사의 기록에서조차 매우 소소하고 유머러스한 일상적인 묘사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다수가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었어요.
△(박천휴) 역사 책에 이름을 남긴 소수의 영웅이 아닌 이상, 엉망진창인 시대를 살았다고 해서 모든 개인이 좌절한 희생자로만 기억되는 건 더 슬픈 일 같아요. 그들 모두에겐 지금 우리처럼 아주 사적이면서도 눈부신 개인의 꿈이, 희망이,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하루는 우리의 오늘처럼 가까운 사람들끼리 사소한 농담과, 갈등과, 내일을 위한 지난한 노력으로 부지런하게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런 인물들을 무대 위에 표현하고 싶었어요.
― ‘어쩌면 해피엔딩’은 데이먼 알반의 노래(‘Everyday Robots’)에서 모티브를 얻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뮤지컬 창작의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박천휴) 카페에서 노래를 듣다가 ‘어쩌면 해피엔딩’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순간처럼 영감은 제 의지가 아니라 멋대로 랜덤하게 떠오릅니다. 그 랜덤한 기회를 높이기 위해서는 늘 호기심이 많고, 남들 보기엔 쓸데없는 생각도 많이 하고, 어떤 것에 대해서든 지나치게 확고한 결정은 섣불리 내리지 않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작가라면 매사 빠르고 확고한 결정보다 오래 고민하는 것에 익숙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SNS에 ‘쿨’한 척 몇 줄로 적을 수는 없는, 인생의 복잡미묘함에 대해 오래 생각하는 것이요. 그런 것들이 영감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