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편집자 주] 언어의 특성 중 역사성이라는 것이 있다. 언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성, 소멸, 변화의 과정을 겪는 것을 가리켜 바로 ‘언어의 역사성’이라고 한다. 언어의 역사성에 기반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신조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매일같이 넘쳐나는 신조어의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같은 신조어들이 다양한 정보기술(IT) 매체를 통한 소통에 상대적으로 더욱 자유롭고 친숙한 10~20대들에 의해 주로 만들어지다 보니, 그들과 그 윗세대들 간 언어 단절 현상이 초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젊은층들은 새로운 언어를 매우 빠른 속도로 만들어 그들만의 전유물로 삼으며 세대 간 의사소통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기성세대들도 상대적으로 더 어린 세대들의 언어를 접하고 익힘으로써 서로 간의 언어 장벽을 없애 결국엔 원활한 의사소통을 꾀하자는 취지에서 연재물 ‘이연호의 신조어 나들이’를 게재한다.◎다음 < > 속 짧은 상황에서 ○○안에 들어갈 인명은?
<지윤은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다. 학교에서는 늘 조용하고 친구들을 만나도 거의 듣기만 하는 편이다. 그러나 집에 오면 활기가 넘친다. 어느 날 저녁 집에서 가족들과 TV를 보던 지윤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SF9이 나와 춤을 추는 모습을 보더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벌떡 일어나 활짝 웃으며 그 춤을 따라 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지윤의 엄마가 지윤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윤이 넌 참 ‘방구석○○’구나.>
1)원소 2)동탁 3)장비 4)여포
정답은 4번 ‘여포’다.
| 사진=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 방송 화면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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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는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중국 후한 말의 장군 이름이다. 여포는 ‘사람 중에 여포가 있고, 말 중에 적토가 있다’는 말로 표상되듯 신기에 가까운 무예로 천하의 명성을 얻었다. 관우와 장비가 합세했음에도 둘을 모두 물리쳤을 정도로 큰 위세를 떨쳤다. 하지만 싸움 잘하기론 첫째갔던 여포는 실제로는 매우 보신주의적 태도를 가진 겁쟁이었다. 조조에게 붙잡혀 죽을 때도 스스로 하비성에 고립되는 길을 택하며 최후를 맞이했다.
이 여포에 빗대 나온 말인 ‘방구석 여포’는 집밖이나 실생활에선 조용하지만, 집이나 온라인상에서는 기세등등해지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악플러들이나 큰 국제대회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운동선수들에게 자주 쓴다.
국립국어원 개방형 국어사전인 ‘우리말샘’에도 나올 정도로 자주 쓰이는 말이다. 변형된 표현으로는 ‘방구석 히틀러’, ‘방구석 스탈린’ 등이 있다. 우리 속담 중에서도 이 같은 상황을 표현한 말들이 있는데, ‘다리 부러진 장수 성 안에서 호령한다’, ‘이불 안에서 활개친다’ 등의 속담이 바로 그것들이다.
지난해 12월 말 국회에서도 이 ‘방구석 여포’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안방 여포’라고 비판하자 여당인 국민의힘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표는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라는 안방에 앉아서 거짓말과 큰소리만 내지르고 있다”며 “얼마나 겁이 많은지 서초동 가까이 갈 엄두조차 내지 않고 있다. 안방 여포를 넘어 골방에 틀어박힌 ‘방구석 여포’는 이 대표가 분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지난해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에 출연한 배우 이세영은 “배우들 드라마 끝나면, 주로 그냥 쉴 때는 뭐 하냐”는 MC 이수근의 질문에 “자기 개발을 하려는 생각을 열심히, 어떤 스포츠인들을 보면서 되게 부푼 목표를 가지고서, 소파에서 방구석 여포”라고 자신의 취향을 솔직히 고백했다. 그러면서 “프리미어리그 좋아하고, 축구 게임도 좋아해서 한창 하다가 작년에 서버 종료돼서 울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