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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미국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가 미 연방국세청(IRS) 납세 기록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미 최상위 부자 25명의 자산가치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총 4010억달러(약 447조원) 늘어난 반면 연방소득세로 납부한 세액은 136억달러(약 15조원)에 그쳤다.
상위 25명 부자들에게 적용된 실제 세율은 3.4%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약 7만달러(약 7810만원)를 버는 미 중산층 가정이 소득의 14%를 연방정부에 납부하는 것과 비교하면 훨씬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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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부호인 베이조스 CEO는 2014~2018년 자산을 약 110조원 불렸지만 같은 기간 낸 연방소득세는 이 중 1%도 되지 않는 약 1조원에 그쳤다. 세금을 매길수 있는 소득이 약 5조원에 불과한 탓이다. 2007년에도 회사 주가가 두 배로 뛰었지만 소득세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블룸버그통신 창업자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도 연방소득세 납부 실적은 자산 증가액 대비 1.3%에 머물렀다. 억만장자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2016~2018년 3년 연속 투자 손실을 봤다며 연방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5년간 자산이 약 27조원 늘었지만 실제로 낸 세금은 자산 증가액의 0.1%인 264억원이었다.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을 이끄는 칼 아이칸도 대출 이자 납부에 따른 세금 공제로 2016~2017년 연방 세금을 피했다. 아이칸은 세금을 줄일 목적으로 대출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부인하며 “‘소득세’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가 있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소득이 없다면 세금을 안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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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억만장자들이 재산이 늘어났음에도 세금을 거의 내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미 과세 제도가 투자수익보다 근로소득에 세금을 매기는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 과세 제도 하에서는 주식이나 부동산을 팔아 ‘현금화’하지 않으면 과세 소득으로 잡히지 않는다. 즉 회사가 성장해 상당한 부를 축적하더라도 보유 주식을 팔지 않으면 신고해야 할 소득이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세금 부담률도 줄어든다는 얘기다.
부자들의 주택과 주식, 보트 등 보유자산에도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엘리자베스 워런 미 민주당 상원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우리의 조세 시스템은 근로소득으로 재산을 불리지 않는 억만장자들을 위해 짜여 있다”며 부자 증세를 거듭 촉구했다.
한편 프로퍼블리카가 입수한 납세 기록은 미 국세청에서 기밀로 취급하고 있는 자료들이다. 이에 찰스 레티그 미 국세청장은 납세 기록 유출과 관련해 내외부 조사에 착수했으며, 유출자는 기소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WP)는 납세 관련 자료를 국세청 직원이나 다른 이들이 공개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퍼블리카 측은 관련 자료를 어떻게 확보했는지 밝히지 않았으며, 공공의 이익에 기여한다는 판단에서 보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기밀 정보를 승인 없이 공개하는 건 위법 행위”라면서도 이번 보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이나 개인이 공평하게 세금을 내도록 하려면 해야 할 일이 많다”고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