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저가항공 시장 진출..두 마리 토끼 잡기

놓치기 어려운 시장..듀얼브랜드 정책 시동
  • 등록 2007-06-04 오후 7:24:36

    수정 2007-06-04 오후 7:26:50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대한항공(003490)이 저가항공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것은 몇가지 이유를 담고 있다. 저가항공 수요가 무시하기 어려울만큼 커지고 있어 프리미엄 시장에만 집중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인식과 대한항공의 기존 인프라를 활용한다면 저가항공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배경이다. 거기에다 기왕 진출할 거라면 미리 공표를 해서 경쟁자들의 진입 욕구를 줄이는 게 시장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도 '2~3년 후 진출'이라는 카드를 미리 터뜨린 이유로 풀이된다.

◇저가항공 진출 왜?

저가항공은 기존 항공사에 비해 30% 가량 저렴한 요금을 무기로 국내선이나 단거리 국제노선을 운항하는 '항공업계의 할인점'이다. 대한항공이 이 시장으로 시선을 돌린 것은 이 시장이 무시하기 어려운 황금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분석에서다. 마치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이 이마트와 롯데마트를 설립하고 저가 할인점 시장에 진출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표면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국내선 수익악화다. 육상 도로망이 개선되면서 항공수요가 정체 또는 감소하고 있고 제주항공 등 저가항공사로 인해 운임인상도 쉽지 않다. 대한항공의 국내선 매출은 최근 3년간 계속 뒷걸음질을 치는 중이다.

중국, 일본, 동남아 등 단거리 노선의 수요 증가는 저가항공이라는 카드를 꺼내지 않고서는 쉽게 대응하기 어려울만큼 급성장하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성장과 내국인들의 여행수요 급증, 항공자유화 협정 등으로 단거리 국제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이들 단거리 고객들에게는 대한항공의 '명품 전략'이 잘 먹혀들기 어려운 구조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장거리노선의 경우는 비즈니스석을 늘리는 게 도움이 되지만 단거리 노선은 서비스의 품질보다는 운임의 저렴함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며 "길어야 4시간 정도 비행이라면 좀 불편하더라도 싼 티켓을 선택하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확산되는 단거리 여행수요에 계속 '비싸지만 명품 항공사' 이미지로만 접근할 경우 중국이나 동남아 항공사들의 저가전략으로 고객기반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대한항공의 저가항공 진출을 선택하게 했다는 뜻이다.

◇저가항공도 대한항공이 하면 다르다?

기존 항공사업의 인프라를 저가항공에 접목할 경우 서비스 품질과 원가경쟁력, 안전도 등에서 불안함을 보이는 저가항공사들과 차별화된 포지셔닝이 가능하다는 판단도 저가항공 진출의 자신감을 불어넣었다는 해석이다.

대신증권 양지환 애널리스트는 "한국공항이 저가항공 사업을 시작한다면 대한항공의 기존 승무원과 비행기를 리스형식으로 임대해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정비 인프라를 공동으로 사용할 경우 원가부담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노선별로 가격을 낮춰 저가수요에 대응하는 것은 대한항공의 브랜드 이미지에 혼란을 주기 때문에 선택하기 어려운 카드다. 저가시장에서는 '대한항공은 비싸다'는 이미지가 걸림돌이 되고 고가 시장에서는 '저가항공사'라는 이미지때문에 고전하기 십상이다. 대한항공이 계열사인 한국공항을 통해 저가항공 사업을 이원화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시아나 제주항공 등 타격..항공업계 영향은?

대한항공의 저가항공 진출은 기존 저가항공사들에게 치명적이다. 각종 정비 인프라 등 부대설비를 새로 갖춰야 하는 기존 저가항공사들은 사용하던 설비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는 대한항공의 원가경쟁력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원화된 구조이긴 하지만 '대한항공의 자회사'라는 든든한 이미지도 안전에 민감한 고객들에게는 크게 어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제주항공 측은 '할인점이 동네 슈퍼를 잡아먹겠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저가항공사가 국내선보다는 근거리 국제선 노선에 초점을 맞춘 것인만큼 아시아나항공과의 직접 충돌도 피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어짜피 동남아와 중국 일본 노선은 대한항공이 아니라도 외국계 항공사의 취항으로 사실상 무한경쟁 시장이 되고 있다"며 "다만 국적기를 선호하는 수요마저 뺏길 수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나항공 역시 악재를 만난 셈"이라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국내 항공사보다는 최근 국내 패키지 관광 시장을 잠식해온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의 저가항공사가 대한항공의 저가항공 진출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대한한공 관계자도 이점을 의식한 듯 "중국과 동남아 저가 항공사들이 한국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는 동아시아 시장이 주력이었고 제주항공 역시 국제선 취항으로 이들 노선을 노리고 있었다"며 "이미 중국과 동남아 항공사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에 대한항공까지 저가항공 시장에 뛰어든다면 사실상 동아시아노선은 항공권 가격의 완전경쟁 시대를 맞게 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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