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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의 감사결과가 발표된 뒤로 공적자금을 놓고 연일 말들이 많습니다. "마구 퍼주고 마구 빼먹었다"는 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엄청난 국민의 부담으로 귀결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예민하지 않을 수 없겠죠. 하지만 안근모 기자는 이런 논란 마저도 부실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합니다. `무책임한 공무원들 앞잡이 노릇이나 한다`는 욕먹을 각오를 하고 쓴 반성문이랍니다.
"공적(公的)자금이 아니라, 공적(空的)자금이다" 어느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구사한 수사입니다. 당연히 신문지면의 `말말말`코너에 그 의원의 이름과 함께 소개됐습니다.
지난 10월말까지 지원된 공적자금은 모두 150조6000억원에 달하는 데, 1년반 동안의 정부 살림살이에 해당하는 천문학적인 돈이 헛되이(空) 쓰였다는 뜻이겠죠.
요즘의 논란도 대개 이런 식입니다. 논란이라기보다는 비난 일색입니다. 어느나라는 공적자금 전액을 회수했다는데, 우리는 절반도 못 거둘 것 같아 빚더미에 앉게 생겼다는 지적도 잇따릅니다.
어디다 퍼부어 버렸는지도 모를 그놈의 공적자금이란 것 때문에 나라가 거덜날 지경이랍니다. 어느 연구소가 추산하기로는 그렇게 날린 돈이 모두 139조원이랍니다. 한 집에 1000만원씩 돌아가는 정도이니 분통터지지 않을 사람이 없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참으렵니다. 공적자금 덕분에 1000만원 정도의 세금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제 가정이 유지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은행들이 영문도 없이 돈 줄을 끊어버리고, 금리를 따지지 않겠다면서 온종일 길바닥을 헤매도 직원들 월급줄 돈조차 구하지 못하던 시절을 `그놈의` 공적자금 덕에 넘겼습니다. 애써 모은 예금을 한 번에 날릴 뻔 했다가 `그놈의` 공적자금 덕에 돌려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끊겼던 월급이 다시 나와 애들 학원 보내고, 외식도 하고, 낡은 TV도 새 것으로 바꾸고, 전셋값 올려줄 돈도 마련했을 겁니다. 많은 분들은 여유도 생겨서 주식투자도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들 가정을 건사할 수 있었습니다.
주가가 700선으로 치받아 오르고, 경기는 바닥을 탈출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국가신용등급이 올라서 외국돈을 빌릴때 이자를 덜 물게 됐다고도 합니다. 무너진 둑을 그렇게 되쌓고 그 안에서 모두들 애쓴 덕입니다.
좀 더 고상하게 표현하면 139조원이란 비용을 들여서 얻은 수익입니다. 수익이 얼마인지를 비용만큼 똑부러지게 추산한 전문가들은 거의 없는데, 장기적으로 600조원에 달한다는 연구(금융연구원)가 있긴 하답니다.
그렇게 얻은 수익인데도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양 제쳐두고, 비용만 따지며 자괴감에 빠지자는 건 옳지 않습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139조원만큼이나 쓰지 않았을 수 있었을 겁니다. 부실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눈먼 돈 빼먹고 도망간 경우도 있고, 내 돈 아니라고 쉽게 퍼준 사례도 있을 겁니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합니다. 잘잘못을 가리고 단 한 푼이라도 더 돌려 받도록 노력도 해야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더 거둬 들이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앞으로 덜 쓰도록 하는 일입니다. 급하게 빚을 낸 돈을 앞으로 10∼20년 뒤로 미뤄 갚을 수 밖에 없는 마당에 우리 후세들이 이자 한 푼이라도 덜 내도록 해야할 것 아닙니까.
돈 많이 썼다고 화내고, 투자(?)한 돈 반토막도 못건지게 됐다고 공박은 하면서도 앞으로 덜 쓸 궁리는 왜 게을리 하는 것일까요. 과거의 잘못을 앞길의 방향타로 삼자는 것은 좋습니다만, 과거를 너무 폄하해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여론과 정보를 중개한답시고 매일 글을 쓰는 저부터 반성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