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워치)과학의 글로벌 스탠다드

  • 등록 2005-11-24 오후 5:27:21

    수정 2005-11-24 오후 5:27:21

[이데일리 조용만기자] 영화의 소재는 가까운 미래의 복제인간 사육 농장이다. 영화에서 짝퉁을 만들어낸 진짜 인간들은 대통령과 유명 정치인, 인기 스포츠맨과 모델 등으로 묘사돼 있다. 권력과 인기를 거머쥔 이들도 병은 불가항력이다.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유전적으로 문제없는 싱싱한 장기를 이식받기 위해 가진 자들은 복제인간의 사육을 요청한다.

농장 관리인들은 복제인간들이 지구 환경오염 때문에 깨끗한 농장속에 격리돼 있다며 날조된 기억을 주입한다. 진짜 인간들이 장기가 필요해 짝퉁을 희생할 시기가 되면 관리인들은 오염없는 낙원 `아일랜드`로 보내주겠다며 복제 인간들을 수술대에 올린다.

영화 `아일랜드`는 인간복제의 암울한 미래상을 섬뜩하게 그려낸다. 영화사측은 첫 개봉지를 한국으로 택했고 황우석 신드롬 덕분에 인기몰이에 성공,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성과는 한국인의 자긍심을 한껏 높였다. 이같은 분위기는 아일랜드의 흥행으로까지 전파됐지만 미국내 상황은 달랐다. 기독교와 보수 우익이 지지기반인 부시 대통령은 줄기세포 연구 지원에 강한 반대입장을 밝혔다. 학계와 진보진영에서는 미국이 첨단 생명공학 분야에서 시대의 조류에 뒤처지고 말 것이라며 조바심을 표시해왔고 교계와의 논란도 적지 않았다.

2004년 2월 세계적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줄기세포 연구 성과를 발표하며 세계 이목을 집중시킨 황우석 교수가 난자제공과 관련한 윤리 문제로 다시 여론의 집중조명을 받고 있다. 황 교수는 오늘 국내외의 뜨거운 관심속에 결국 고해성사에 나섰다.

여성 연구원의 난자 제공에 대해서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털어놓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여성 연구원 난자 제공 문제는 제럴드 셰튼 피츠버그 의대 교수와의 결별을 불러왔고, 이후 윤리성 논란의 핵으로 떠오른 사안이다. 연구에 사용된 난자에 대해 보상금을 지급했다는 의혹도 사실로 드러났다.

황 교수팀은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할 당시 난자 출처에 대해 자발적으로 기증받은 난자를 사용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결국 거짓말이 돼 버렸다. 인체 및 생명공학과 관련한 기본적 연구 윤리와 국제적 기준을 위반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세계의 반응은 뜨겁다. 외신들이 이를 급보로 타전한 것은 물론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엔진인 구글도 `복제기술의 선구자, 공개 사과`(Cloning pioneer apologizes to public)라는 기사를 머리에 올렸다. 윤리성 문제는 황 교수가 만시지탄이라며 자책한 대로 진작에 밝혔더라면 좋았을 일이다.

황 교수는 사이언스에 연구성과를 발표하면서 난자의 출처에 대해 결과적으로 오류를 범했다. 연구 성과와는 관련이 없는 오류였지만 윤리적으로는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기준을 지키기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의 사례로 비유해보자. 국제 금융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은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들여 국제 회계기준에 맞춰 재무제표를 재작성해야 한다. 한국에서 통용될 수 있는 기준이라고 하더라도 세계 시장에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받고,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잣대를 따라야 한다.

줄기세포 연구는 앞으로 넘어야 할 벽이 많다. 연구 자체적으로도 난제가 많겠지만 인류의 난치병을 해결하고, 한국이 줄기세포의 종주국으로 위상을 세우기 위해서는 종교적, 윤리적 장벽도 함께 극복해야 한다. 난자제공에 대한 윤리적 결함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우익과 카톨릭을 설득하기는 힘들다.

실험 재료를 어디서, 어떻게 구했느냐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세계 인류가 이 문제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줄기세포 연구가 생명 또는 인간의 존엄성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영화 아일랜드가 그려내는 암담한 미래는 잘못된 윤리 의식과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과학에서 비롯되고 있다.

황 교수는 "윤리와 과학은 인류문명을 이끌어가는 두 수레바퀴"라면서 "이번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응하여 냉정하고 신중하게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스탠다드, IMF 외환위기 이후 시장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명제다. 생명공학 분야에서 최고의 과학자가 윤리뿐 아니라 글로벌 스탠다드를 이번 사태의 교훈으로 설정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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