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M&A, 싸움의 기술

  • 등록 2006-02-21 오후 6:40:58

    수정 2006-02-21 오후 6:45:29

[이데일리 윤도진기자] 경제 행위를 다 승부사적인 `돈 지르기`로만 규정할 순 없습니다. 어이없는 우연들이 연속되면서 상황이 희화화되기도 하죠. M&A, 피와 살이 타는 `전쟁`이지만, 결과는 냉정한 `돈`이 아니라 감성적인 `변수`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그런 것들도 놓치면 안된다는게 경제부 윤도진 기자의 튀는 생각입니다.

이제는 낡은 얘기지만 개그식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옛날에 말입니다. CNOOC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중국해양석유공사라는 분이지요. 중국 태생인 이분은 전세계를 상대로 `맞장`을 뜨고 다니셨습니다.

너, 너 석유회사? 나 CNOOC야. 딱 이러고 들어갑니다. 그러곤 냅다 돈을 지릅니다. 인수하겠다는 겁니다. 중국 정부라는 든든한 전주가 있어서 이 분, 자금력은 참 대단합니다.

그러면 웬만한 석유회사는 넘어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접수하신 해외 정유회사들이 참 많습니다.

올해들어서도 나이지리아의 석유회사가 보유한 유전 지분도 절반 가까이 매입했습니다(22억7000만달러). 또 카자흐스탄에 대규모 유전을 갖고 있는 캐나다 국적 `네이션스 에너지`(20억달러 규모) 인수도 노리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하루 석유 생산량 41만배럴의 중국최대 유전 개발기업. 참 대단한 분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한번 무릎을 꿇으신 적이 있습니다. 바로 지난해 미국에서입니다.

지난해 CNOOC는 미국 석유회사인 유노칼의 인수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역시 돈으로 해결하려 하셨지요. 주당 67달러, 총 185억달러의 인수조건이었습니다. 경쟁사인 미국 2위 정유회사 셰브론이 최종인수한 171억달러보다도 월등하게 높은 가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안 통했습니다. 문제는 바로 여론이었습니다. 온 세계에 `시장 개방`을 외치는 미국이 "중국이 돈으로 습격한다", "에너지 안보 문제있다"는 `황화론(黃禍論)`에 휩싸였기 때문입니다.

급기야는 CNOOC에 워싱턴발 크로스카운터가 날아옵니다. 미 의회는 정부가 CNOOC의 유노칼 입찰을 승인하기에 앞서 에너지부, 국토안보부, 국방부 등 3개 정부기관으로부터 별도 조사를 받도록 하는 새 조치를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익실현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는 주주들이 돈을 외면하는 결정을 내리기에 이릅니다. 더 좋은 가격보다, 정치적 수사로 가득찬 `에너지 안보`를 택했습니다.

CNOOC는 미국에서 고개를 떨구게 됩니다. 주주총회에서 유노컬 주주들은 77.2%의 찬성비율로 낮은 가격조건의 셰브론을 택했습니다.

개그식 표현까지 동원해 하고자한 얘기는 이겁니다.

M&A. 파는 쪽이나 사는 쪽, 모두 원칙은 가격이라지만 변수는 숱하다는 겁니다. 특히 `정치`라는 변수는 무시 못합니다. 최근의 국내 금융권의 M&A에서도 그렇습니다. 차라리 가격 경쟁은 번외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론스타의 매각작업이 한창인 외환은행(004940)을 두고 붙은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의 말싸움도 이런 맥락에서의 주도권 싸움으로 보입니다.

국민은행은 "외환은행을 인수해서 개도국 시장을 주름잡겠다", "이만한 규모의 리딩뱅크 하나 쯤은 있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반면 하나은행은 `독점`을 두고 문제제기를 합니다.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경우 시장점유율이 커져 독과점의 우려가 있다는 겁니다. 경쟁이 돼야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이런 말다툼을 두고 "무슨 물건을 놓고 이래저래 말만 많나", "실익없는 경쟁이다", "소모적인 논쟁만 거듭해 가격만 높이는 거 아니냐"는 둥 우려도 큽니다.

그러나 세계 시장에서 정치적 변수가 작용한 M&A 사례는 숱합니다. 최근에도 인도 국적의 세계 최대 철강업체 미탈스틸이 2위인 룩셈부르크의 아르셀로에 대해 적대적 인수를 선언하자 유럽 각국 정부가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로 보면 최근 외환은행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소모전은 아닌 듯합니다.`가격외 변수가 가격을 뒤엎은 사례`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겁니다.

이들의 말싸움 방향은 상대를 향해 있지 않습니다. 여론을 향한 것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나, 정치적 영향을 미칠 여의도, 정책을 집행하는 과천을 향해 있습니다.

최근 불거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의혹에 대해서도 한덕수 부총리는 "외환은행 매각은 관련된 법과 규정, 진행되고 있는 조사 등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굳이 한마디 거들지 않고 법대로 하겠다는 모습입니다. 미국과의 FTA 협상도 진행중인 마당에 시장을 건드리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미국의 여론 포화를 맞을 것을 우려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은행 산업은 공공성도 강조되기 때문에 정치적, 정책적 의사결정의 영향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공정법상 독과점 문제, 론스타 의혹 등으로 불거진 외국자본에 대한 편견,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FTA 협상 등 변수들은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다 포함하게 되면 정치·정책 판단, 여론 등이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은 다분합니다.

혹자는 M&A가 종합 예술이라고도 합니다. 영화나 마찬가지라는 거죠. 그렇다고 극장에서 영화보는 양 정신 내놓고 들여다 보면 안될 듯 싶습니다. 화려한 테크닉에 이리저리 휩쓸리다가는 스토리 놓치기가 십상입니다.

금융권의 M&A는 예술 이전에 전쟁입니다. 거대한 은행의 수많은 종업원들의 운명을 쥐락펴락하고, 은행산업도 이에따라 좌지우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경제도 들썩일 수 있고요.

외환은행을 둘러싼 숱한 논란들. 예술 작품을 단순 감상하기 보다는, 이 배우의 연기가 어떤 순간에 확 돌변하는지, 이 감독은 여기서 어떤 기법을 쓰는지 꼼꼼히 들여다 봐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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