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김진석기자] 이번 주 초 기자의 눈길을 끄는 두 개의 기사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산업자원부가 한국생산성본부에 의뢰해 국내 511개 기업을 대상으로 브랜드 경영실태를 조사한 결과이다. 또 하나는 증권예탁원이 지난해 기업 이름을 바꾼 상장 및 등록회사 현황을 분석한 내용이 바로 그 것이다.
우선 산자부 관련 기사의 골자는 이렇다. 브랜드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조사대상 기업의 79.8%가 공감하고 있지만 실제 브랜드 관리를 위해 전담 부서를 두고 있는 기업은 28.4%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기업 규모별로는 대기업의 43.8%가 전담 부서를 두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은 22.2%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자부가 이 같은 분석결과에 대해 "브랜드 자산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우리 기업의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한 전략적 마인드가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앞으로 브랜드 통합정보망을 구축하는 등 브랜드 경영 촉진책을 마련키로 했다"고 밝힌 내용도 담고 있다.
그리고 증권예탁원의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지난해 기업 이름을 바꾼 상장 및 등록회사 수는 모두 108개 사로 전년(2001년)에 비해 32% 증가했다. 구체적으로 상장기업이 45개 사, 코스닥 등록기업이 54개 사, 제3시장 기업은 9개 사로 모두 108개 사가 이름을 변경했다는 것이다.
산자부와 예탁원의 이번 조사 결과는 우리 기업들의 브랜드 가치에 대한 인식 수준과 기업의 이름 바꾸기가 얼마나 성행하고 있는지 그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브랜드 가치의 중요성은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실제 기업 간 인수합병(M&A)이 이뤄질 때는 그 값어치가 고스란히 반영된다. 일종의 영업권으로써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세계적인 면도기 생산업체인 질레트는 로케트전기의 상표권과 영업권 일부를 인수하면서 "로케트" 브랜드 가치로 660억 원을 인정한 바 있다. 삼성제약의 살충제 사업을 사들인 한국존슨도 "에프킬러" 상표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297억 원을 지불했다. 세계에서 브랜드 가치가 가장 높다는 코카콜라의 상표권은 696억 달러(88조3920억 원)에 달한다는 분석 결과도 나와 있다. 이처럼 무형의 상표권이 갖고 있는 가치는 실로 엄청나다.
또 기업과 기업주는 사라져도 브랜드는 남는다. 삼나스포츠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나이키" 신발을 제조 판매하던 삼나스포츠는 지난 94년 나이키가 지분 99.3%를 인수하면서 자진해서 상장을 폐지했었다. 그러나 "나이키"브랜드는 시장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똑같은 종류와 성능의 제품이 있다고 해도 어떤 브랜드 이미지를 입히느냐에 따라 제품의 가격차는 천양지차로 벌어지는 게 현실이다. 국내기업이 생산한 제품이 시장인지도가 낮은 자사 브랜드를 붙여 팔 때와 주문자생산(OEM)에 의해 인지도 높은 상표를 부착하고 판매할 때 가격차는 엄청나다. 상표의 이미지가 매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경제학에서도 상품의 판매는 물건과 더불어 기업과 그 기업이 속한 나라의 문화적 이미지를 함께 파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 교수가 지난 98년6월 방한했을 때 "한국의 문화정체성과 경제위기"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한국이 겪는 어려움은 그동안 세계시장에 물건을 팔면서 이미지를 만들어 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기업이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물건을 잘 팔았지만, 부가된 이미지가 없는 탓에 가격경쟁력이 떨어지자 경쟁력을 잃었다"고 꼬집었었다. 소르망 교수는 문화와 이미지를 강조한 것이다. 결국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강조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의 경우 예탁원 분석 결과에도 알 수 있듯이 CI작업을 한다는 이유로 상호를 마구 바꾸고 있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상호만으로 그 회사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때문에 주식투자자들이 겪는 혼란도 상당하다.
상호변경을 통해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고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려는 회사측의 당초 의도와는 달리 업종이나 회사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부정적 효과를 낳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다.
증권업계에서 영업통으로 잘 알려진 모 투신운용사 사장은 "10여 년 전 만해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전 종목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지만 최근 수년간 상장 및 등록기업이 봇물을 이루면서 이제는 내용파악이 쉽지 않다"면서 "특히 알 수 없는 영문 조합으로 이뤄진 상호들이 많아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상당수 시장참여자들도 이 사장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상호와 브랜드는 기업 가치를 제고할 뿐만 아니라 결국 주가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브랜드 가치는 기업이 생산한 제품처럼 실체가 없기 때문에 비 계량적인 요소가 강하다. 그러나 증권시장에서 분석의 틀로 자리잡은 "CEO 주가"처럼 브랜드 가치도 이미 "시장외적인 가치(Non-Market-Value)"로 평가받고 있다.
국민은행과 합병되기 전 주택은행이 "김정태 효과", 이른바 CEO 효과를 톡톡히 봤던 것처럼 브랜드 가치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프로골퍼 박세리 선수가 지난 98년 여자프로골프 4대 메이저 대회 가운데 하나인 US오픈에서 우승했을 때 스폰서업체는 5억 달러 이상의 광고효과를 올린 것으로 업계는 추정했었다. 물론 광고효과는 기회 효과이지만 결과적으로 기업 이미지를 높여 천문학적인 마케팅 효과를 거둔 셈이다. 기업가치를 제고한 것이다.
반대로 브랜드가치의 저하는 기업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지고 결국 해당기업의 주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상호변경도 자칫 인지도만 낮추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주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리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시장의 메커니즘을 고려할 때 무분별할 정도로 성행하고 있는 기업의 상호 개정은 비용과 주가 측면에서 분명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미 상호를 개정한 기업은 투입된 비용과 노력에 비해 산출이 긍정적 결과를 낳았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또 상호 개정을 준비하는 기업이 있다면 먼저 개정으로 인한 기회 효과의 득실 여부를 따져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