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백신 지식재산권 포기 지지했지만…원료 확보 등 산너머 산

美 “백신 지재권 포기 지지…특별한 상황엔 특별한 조치”
WTO 논의 개시했지만…장시간 소요·전원합의 불투명
제약사들 “안전위협 등 부작용 커…직접 주는게 낫다”
  • 등록 2021-05-06 오후 1:19:05

    수정 2021-05-06 오후 9:26:14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AFP)
[이데일리 김정남 뉴욕특파원 방성훈 기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화이자, 모더나 등 코로나19 백신 제조업체가 지식재산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지지를 표명했다. 코로나 백신 자국 우선주의, 미국 내 생산 후 배포 등을 주장하던 미국의 입장이 전향적으로 바뀐 것이다.

이에 따라 백신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국가들에도 공급 확대를 위한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최종 합의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화이자, 모더나 등 코로나 백신을 개발해 공급 중인 제약사들은 백신 생산량을 늘려 공급을 확대하는 게 낫다며 반발하고 있다.

美 “백신 지재권 포기 지지…특별한 상황엔 특별한 조치”

5일(현지시간) CNN방송 및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유튜브 백악관 채널로 중계된 ‘미국 구조 계획’ 이행 상황 공유 기자회견에서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 일시 면제 주장을 지지하는 지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했다.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날 공식 성명을 통해 “미 정부는 지식재산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믿고 있지만, 이 유행병을 종식하기 위해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 포기를 지지한다”며 “목표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최대한 빨리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 적용을 일시 면제해달라며 WTO에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백신 지식재산권 일시 면제 요구안은 전 세계 100개 이상의 개도국 등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미국 내에서도 민주당 소속 진보계 거물 버니 샌더스 상원 예산위원장이 지식재산권 포기를 지지했고, 민주당을 중심으로 100명 이상의 의원들이 같은 취지로 바이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WHO는 즉각 환영의 뜻을 표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기념비적 순간”이라며 “백신 형평성을 위한 역사적 결정”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면서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백신 지식재산권 보호 면제를 지지하는 타이 대표와 바이든 대통령의 헌신은 글로벌 보건위기를 다루는 미국의 기치와 리더십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라며 “중요한 시기에 모든 사람들의 안녕을 우선시하는 미국의 결정에 찬사를 보낸다”고 밝혔다.

EU도 미국 등과 지식재산권 포기 관련 논의를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6일(현지시간) 유러피언 유니버시티 인스티튜트 연설을 통해 “EU 또한 (코로나19) 위기를 효과적이고 실용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모든 제안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며 “백신 지식재산권 보호에 대한 미국의 제안이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사진=AFP)
WTO 논의 ‘전원합의’ 불투명…제약사들 “직접 주는 게 낫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많다. WTO 내에서 최종 협의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노바백스, 아스트라제네카(AZ) 등의 백신을 생산하는 유럽 등에선 반대 의견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제약사들은 협상이 오랜 기간 걸릴 것으로 보여 미국 내에서 생산 후 배포하는 게 더 빠르다는 의견을 제기한다.

이번 WTO와 협상을 시작한 타이 대표는 이날 “합의에 기초하는 WTO 기구 특성 및 사안의 복잡성을 감안했을 때 관련 논의는 시간이 걸릴 것”라고 예상했다. 구체적인 지식재산권 면제 계획이 마련되기 위해선 수 개월간의 협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게다가 WTO 결정은 164개 회원국 전원 합의가 필요하다.

스위스, 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은 자국 제약사들을 의식해 반대 의견을 낼 가능성이 높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스위스, 영국, EU, 일본, 브라질 등은 이미 지난해 10월 인도와 남아공이 관련 제안을 처음 제기했을 때 반대 의견을 냈다.

게다가 지식재산권 면제안이 통과되더라도 WTO가 제약사에 백신 포기를 강제할 권한은 없다. WSJ은 “(제약사들이) 법적으로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만큼 실제 유예 적용은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서 생산 후 배포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도 전날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백신 특허를 공개해도) 개도국에 대한 백신 공급이 늘어날 것인지 알 수 없다”며 “결과물을 내놓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국제 무역규정을 폐기하려는 계획에 반대한다.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효과적 방법으로 백신을 그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약사들도 “개도국에 백신을 직접 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제약사들은 지식재산권 포기시 자칫 러시아나 중국 등에 민감한 정보가 넘어갈 수 있는데다, 각 국가가 ‘복잡한’ 생산시설을 지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지적해 왔다. 나아가 품질이 떨어지는 안전하지 않은 백신이 대량 유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전미의약연구제조업협회(PhRMA)는 “이미 경색 상태인 공급망을 약화시키고 위조 백신이 확산할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백신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백신 원료 공급난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제약사들이 지식재산권을 포기해도 대부분의 국가는 백신을 만들 원료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 노바백스 백신 원료인 QS-21는 팬데믹 이후 수요가 100배로 뛰어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타이 대표는 “미 정부는 백신 제조·유통 확대를 위해 민간 부문 및 가능한 모든 파트너와 협력하는 노력을 지속 강화할 것”이라며 “이는 백신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료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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