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귀의 객으로 돌아온 "마지막 프린스"

영친왕·이방자여사 아들 이구씨 별세
日서 심장마비 추정… 24일 발인예정
  • 등록 2005-07-19 오후 9:08:44

    수정 2005-07-19 오후 9:08:44

[조선일보 제공] 한 사내가 돌아갔다. 후사(後嗣)도 없고, 부인과도 이혼한 그의 죽음을 지켜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도쿄 아카사카 프린스호텔의 한 객실. 사망 시간(16일)도, 사망 원인(심장마비)도 현재로서는 추정에 불과하다. ‘변사’에 해당하기에, 그의 시신은 19일 오전 일본 검찰에서 부검했다. 이구(李玖·1931~2005)씨.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英親王·1897~1970)과 일본 왕족 이방자(李方子·1901~ 1989) 여사의 아들. 조선 왕실의 마지막 황세손(皇世孫)이었던 그의 죽음은 18일 오후 늦게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이사장 이환의)에 알려졌다. 외사촌으로 평소 그를 돌보던 나시모토(梨本)씨가 18일 그를 찾아갔다가 화장실에서 그의 주검을 발견, 종친회에 알린 것이다. 그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과 궤를 함께했다. 1931년 도쿄에서 그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망국의 이름뿐인 왕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일본 왕실로부터 ‘세자(世子)’로 책봉됐고 종친회도 그를 ‘황세손’(=황태자)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그의 삶에 영영 족쇄로 남은 이름이었다. 일본에서 근대 교육을 받았던 그는 14세에 광복을 맞았지만, 귀국할 수 없었다. 집권자들은 황세손의 귀국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를 도운 것은 일본 점령군사령부인 맥아더사령부였다. 1950년 미국 MIT 건축과 유학. 졸업 뒤 뉴욕의 한 건축설계사무실에서 일하던 그는 5년 연상인 줄리아 여사를 만났고 1958년 10월 뉴욕의 한 교회에서 결혼했다.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뒤 1963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도움으로 귀국한 그는 어머니 이방자 여사와 함께 창덕궁 낙선재에서 살았다. 서울대와 연세대 등에서 건축공학을 강의하기도 했으며,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1979년 그가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를 냈고 그는 “돈을 구하러 간다”며 고국을 떠나 일본에 머물렀다. 그 와중에 줄리아 여사와 이혼(1982년), 어머니 이방자 여사의 사망(1989년)을 겪었고, 일본의 여성 점성술사와 함께 살았다. 그는 1996년 11월 ‘영구 귀국’했다. 종친회 총재로서 사무도 보고, 종묘에서 열리는 대제(大祭)를 주관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나는 더 이상 왕가와 관련이 없는, 개인 이구일 뿐”이라고 내내 밝혔다. 하지만 그의 ‘영구 귀국’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신경쇠약증상도 있던 그는 고국 땅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고, 일본과 한국을 오가다가 일본 땅에서 죽음을 맞았다. 빈청(殯廳=빈소)은 그가 어머니·아내와 함께 한때를 행복하게 살았던 낙선재. 89년 이방자 여사와 덕혜옹주의 빈청이 차려졌던 곳이며, 조선 황실의 빈청이 낙선재에 마련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인다. 9일장으로 24일 발인 예정.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고종황제릉) 뒤편 영친왕 묘역(영원). 신형준기자 hjsh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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