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는 2일 5·18 관련 외교문서 14건, 총 53쪽 분량을 추가공개했다. 1990년대 공개된 문서 중 삭제됐던 부분이 제공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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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복은 13대 공군참모총장 출신으로 12·12 군사반란 이후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다. 이후 그는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진행된 12·12 및 5·18 수사 과정에 적극 협조해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군부 인사들의 유죄판결을 받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당시 진술 과정에서 자신은 허수아비 장관이라고 고백한 적 있는데 이번 국무부 자료를 통해 이것이 새삼 확인된 셈이다.
매년 개최된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을 앞두고 미국이 전두환 측에게 압력을 가한 정황도 나왔다. 국무부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 대사에 6월 SCM을 앞두고 군 내부의 갈등이 지속되고 안정되지 않는 한 SCM 개최가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하라고 했다. 또 글라이스틴 미국 대사가 3월 전두환과 만난 것에 대해 미국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냈을 가능성을 지적하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결국 그 해 SCM는 열리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5·17 전국 계엄령 전국 확대에 대한 미국 측의 반발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18일 김경원 주미 대사가 리차드 홀부르크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와 만나 이같은 조치가 “평화와 질서를 회복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홀부르크 차관보가 이 사태를 우려한다는 의견을 피력하자 김 대사가 매우 당황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외에도 5·18 당시 광주에 거주하는 미국 출신 선교사가 ‘광주항쟁’(KWANGJU RIOT)이라는 이름으로 남긴 기록이 장로교회 선교사인 존 언더우드라는 사실과 1967~1969년에 광주와 목포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한 미국인 리차드 크리스텐슨이 5·18 이후 광주를 방문해 보고 들은 내용을 미국대사관에 보고한 내용도 밝혀졌다.
이번 문서에는 5.18 진상규명의 핵심인 발포 명령의 책임자에 대한 부분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 최영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1과장은 “한국에서 광주 진압작전 세워서 계엄사령부가 한·미 연합사령관이 3차례 논의를 거쳐 만들어진 것이 24일 상무총정작전이라는 광주진압계획”이라며 “1980년 전두환·노태우 정부 거치며 관련 문서가 상당히 많이 유실·변조됐는데 이 문서의 복사본이 한·미 연합사에 있어 외교부를 통해 요청했으나 이를 전달받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미국 입장에서 민감한 대목을 두고 기밀 해제해도 좋을지 판단을 유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최근 14건의 문서를 추가적으로 보낸 것으로 봤을 때 미국이 전향적으로 공개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희송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교수는 “그동안 미공개됐던 미국 국무부 자료가 어떤 것이었는지 확인했다는 의미는 있지만 5·18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에는 제한적이다”라면서 “1988년 진상조사 특위와 1995년 수사 당시 미국 측에 많은 자료를 요청했는데 미국이 제출한 답변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중심으로 자료를 요청하는 것 역시 한 방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