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보루’인 퇴직연금에 손을 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로 생활자금은 줄어든 반면, 전세금·보증금 등 목돈이 필요한 사람은 늘어나면서 중도인출 등의 방법을 통해 퇴직연금을 깨고 있는 것이다.
특히 종사자 30인 미만 사업장의 중도인출 증가세는 더 컸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퇴직연금 중도인출 금액은 총 11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9.4% 늘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원들 중에서 퇴직연금을 빼 쓰는 사례가 특히 많았다는 의미다.
현재 DB(확정급여형)를 제외한 DC(확정기여형)와 IRP(개인형퇴직연금)에서는 중도인출이 가능하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 상황에서도 특정한 사유가 생기면 중간에 빼서 쓸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퇴직연금을 일부라도 중도인출을 받게 되면 퇴직후 연금으로 수령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도인출은 사실상의 해지를 의미한다.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할 수 있는 경우는 △무주택자인 가입자가 본인명의로 주택을 구입 하는 경우 △주거목적의 전세금 또는 임차보증금을 부담하는 경우 △가입자가 본인 또는 부양가족의 6개월 이상 요양을 필요로 하는 질병·부상에 대한 의료비 △5년 이내에 개인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은 경우 △5년 이내에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 △천재 지변 등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하는 경우 등으로 제한돼 있다.
그는 “최근 전세금이 상승하면서 목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늘어났다”며 “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고도, 퇴직연금 중도인출을 통해 추가자금을 확보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고 전했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좋지 않다는 점도 퇴직연금을 깨는 한 이유다. 부진한 퇴직연금 수익률로 실망감이 큰 상황에서 ‘노후안정 자금’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커지며 쉽게 인출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 1분기 5대 시중은행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사실상 0%대로 진입했다.
최근 정부는 코로나19을 사유로 한 퇴직연금의 담보대출과 중도인출을 허용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퇴직연금에 손을 대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노후 자금인 퇴직연금을 당겨쓰는 현상이 지속되면 앞으로 저소득층 빈곤 문제와 소득 양극화 문제가 더 심화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류건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1인당 퇴직금 적립규모가 3000만원 수준 정도로 낮은 편인데, 코로나19나 집마련 등의 이유로 퇴직연금을 빼서 쓰면 사실상 노후자금 확보는 어렵게 된다”며 “특히 저소득 계층의 경우 그나마 있는 노후자금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