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담합 면세점에 과징금 '0원'…체면구긴 공정위

  • 등록 2016-05-11 오후 12:00:00

    수정 2016-05-11 오후 12:00:00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환율을 짜고 치는 식으로 상품 판매가격을 담합한 면세점 사업자에게 칼을 빼 들었다. 그러나 으름장만 놓고 다시 칼집에 칼을 넣었다.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 이야기다.

면세 사업자 심사에서 탈락한 롯데와 SK(034730)는 기사회생의 청신호가 켜졌다.

△지난 4일 정부 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건물 심판정에서 8개 면세점 사업자의 가격 담합 사건을 심사하는 전원회의가 열렸다. [사진=박종오 기자]
롯데 등 8개 면세점 사업자, 환율 담합 협의

지난 4일 정부 세종청사 공정위 건물 4층 심판정에 공무원과 기업인, 변호사 등 60여 명이 모였다. 이날 이곳에서 공정위 최고 심의·의결기구인 전원회의가 열렸다.

안건은 ‘8개 면세점 사업자의 가격 담합’이었다. 롯데(호텔롯데·부산롯데호텔·롯데디에프글로벌·롯데디에프리테일)·호텔신라·동화면세점·에스케이네트웍스·한국관광공사 등 8개 회사는 공항·시내 면세점을 운영하면서 환율을 담합한 혐의를 받았다.

면세점은 통상 달러로 표시한 가격으로 물건을 판다. 8개 사는 국산품의 이 달러 표시 가격에 자기들끼리 임의로 정한 환율을 적용해 업체 간 가격 경쟁을 없애고 값을 올려받았다는 것이 공정위 판단이다.

예컨대 외환은행이 고시하는 시장 환율이 달러당 1000원이라면 1만원짜리 홍삼 세트는 면세점에서 10달러에 팔아야 한다. 하지만 사업자들이 짜고 달러당 800원의 환율을 공동으로 적용할 경우 판매 가격은 12.5달러로 올라간다. 환율을 내려 2달러 넘는 차익을 얻는 셈이다. 이 회사들의 담합 횟수는 2007년 1월부터 2012년 2월까지 5년간 14차례에 달했다.

정재찬 공정위원장 등 상임·비상임위원 8명이 회의장 전면에 착석하자 법적 공방이 시작됐다. 김재신 기업거래정책국장 등 공정위 직원 3명이 검사 역할인 심사관으로 나섰다. 8개 사는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 등 17명을 법률 대리인으로 내세워 변론을 펼쳤다.

△면세점 국산품 달러표시 판매가격 결정과정 예시 [자료=공정거래위원회]
환율 담합은 인정…부당이득 추정 못해

기업 변호인단은 모두 순순히 환율 합의 사실을 인정했다. 롯데 측 대리인인 율촌 변호사는 “재발이 없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선처를 부탁드린다”며 처음부터 읍소 전략을 폈다. 동화면세점과 에스케이네트웍스(워커힐), 관광공사를 대리한 지평·세종·화우 변호인들은 롯데와 호텔신라로 화살을 돌렸다. 대기업이 시킨 대로 한 것일 뿐이니 처벌 수위를 낮춰달라는 이야기다.

업자들이 공통으로 항변하는 쟁점은 대략 3가지로 압축됐다. 첫째, 환율을 합의한 것은 정해진 법적 요건이 없는 상황에서 매일 요동치는 환율에 맞춰 가격표를 바꾸긴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니 택한 불가피한 조처다.

둘째, 가격이 아닌 거래 조건에 대한 합의다. 적용 환율을 공동으로 정하긴 했으나 이후 자체 할인 등 별도의 가격 정책을 통해 최종 가격을 결정했으므로 경쟁을 제한했다고 볼 순 없다. 셋째, 면세점에서 출국자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물품은 수출품과 마찬가지여서 국내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을 제한했다고 볼 수 없다.

호텔신라 측 변호사는 “환율 협의 기간 42개월 중 21개월은 오히려 적용 환율을 시장 환율보다 높여 판매 가격을 낮췄다”며 “가격 인상 의도가 없었고, 초과 이익을 얻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공정위도 피조사인 진술을 근거로 반박에 나섰다. 심사관인 김재신 국장은 “전체 담합 기간 63개월 중 업체들이 적용한 환율이 시장 환율보다 낮은 경우(면세점 사업자에 유리)가 60%(38개월)에 달했다”면서 “업체들이 수익 감소를 우려해 최종 가격 결정 과정 중간에 경쟁 여지를 줄였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공정위가 업체가 환율 담합으로 챙겼을 부당 이득 규모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거나 추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8개 면세점 사업자의 환율 합의 내역 [자료=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없이 시정명령…롯데·SK 한숨돌려

전원회의 위원들은 사실상 사업자 손을 들어줬다. 8개 사에 ‘시정 명령’을 내린 것이다. 시정 명령은 공정위가 부과할 수 있는 처벌 중 ‘경고’ 다음으로 수위가 낮다. “다음부터는 담합하지 말아라. 또 걸리면 가중 처벌한다”는 정도의 의미다. 담합 기간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도 단 한 푼도 매기지 않았다. 이날 전원회의에 참석한 한 심사관은 “위법인 것은 맞지만, 경쟁 제한성이나 부당 이득 규모가 미미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면세점 운영사는 웃게 됐다. 롯데 월드타워점과 에스케이네트웍스 워커힐점은 작년 면세 특허 재승인에 실패해 이달 또는 다음달 문을 닫을 판이다. 최근 정부가 서울에 신규 면세점 4곳을 추가하기로 해 부활의 길이 열렸지만, 공정위 판결에 따른 여론 압박이 부담으로 남아 있었다.

반면 공정위는 입맛이 쓰게 됐다. 공정위는 이번 면세점 담합 사건 조사에 2012년부터 최근까지 4년여를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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