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 상담하신다고요? 요즘 금리도 오르는데 고정금리 상품인 `보금자리론`을 우선 추천하고 싶습니다. 생애 첫 대출은 생각해 보셨는지요?"
금융감독원이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규제에 나선 직후인 22일 오전 서울시내 A 은행 지점 대출창구. 대출 담당자들은 찾아온 고객들에게 자기 은행의 상품을 파는 대신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을 먼저 추천하느라 쩔쩔매고 있었다. 은행 자체 대출상품을 권하던 얼마전 모습과는 100% 반대다.
인근 B 은행 지점의 창구에서는 금새라도 내줄 것 같던 대출이 중단됐다며 다음달까지 기다려 대출을 받을 경우엔 금리가 오를 수도 있다는 설명에 "어이없어" 하며 돌아가는 고객도 있었다.
금융감독원이 시중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제한하고 나서자 은행 창구에서는 당혹스러운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판매하는 은행원이나 대출을 받으려는 고객 모두 혼선을 겪기는 마찬가지.
지점에서는 한도를 소진해 급히 자금이 필요한 고객에게 대출을 못하자 다른 은행 지점으로 고객을 빼앗기는 경우도 있어 이번 조치에 은행원들도 불만이 가득했다. 또 자기은행의 대출 총액을 늘리지 않기 위해 보금자리론 등으로 고객을 유도하는 등 갑작스런 조치에 허둥대는 모습이 역력했다.
◇ “고객님, 죄송하지만 다음달에 다시 오세요“
이미 주택대출 한도를 소진한 은행의 경우 새 고객에게 주택담보대출을 내줄 수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농협의 한 지점 관계자는 "지난 20일 밤 본점으로부터 주택담보대출의 총액한도를 모두 소진했으니 6월말까지 일시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접수했다"고 말했다.
그는 "6월은 금감원 조치 첫달이기 때문에 기존에 상담을 진행해 승인을 받은 대출 이외에는 신규로 대출을 할 수 없다"며 "고객들이 대출이 되는 다른 은행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은행 한 지점 관계자는 "생애최초 대출 기준이 바뀔 때도 은행 창구에 혼란이 컸었다"며 "갑작스런 이번 조치에도 당혹스럽다"고 털어놓았다.
금감원 조치 이전에 이미 주택담보대출을 꽉 죄었기 때문에 별로 달라지는게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우리은행의 한 지점장은 "부동산거래가 활발한 시즌이 아니라 큰 영향을 받진 않고 있다"며 "지금으로서는 사전에 승인받은 것을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다른 지점의 지점장은 "이미 금리를 타행보다 높여 신규여신 집행이 잘 안되고 있다"며 "여기에 금감원에서 한도를 줬기 때문에 대출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하나은행 한 지점 관계자는 "일부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하는 등 과장된 반응을 보이는 곳도 있지만 은행에 따라 대출 적용이 다르게 되는 측면이 있다"며 "시간상 여유가 있으면 조금 기다려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권유하기도 했다.
◇시중금리 오르고 우대금리 없어지고 대출은 빡빡, `삼중고`
대출 받기가 어려운 것 뿐 아니라 시중금리 상승분 외에 대출금리가 더 오를 가능성도 있다.
국민은행의 한 지점의 대출담당자도 "금감원 등의 지시에 따라 이미 2주전부터 우대금리 할인 폭 등을 줄였다"며 "주택대출에 대해 또 다른 시행령이 내려오게 되면 대출 실수요자들에게 더 높은 금리가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기다렸다 오른 금리로 대출 받으라니"
주택대출을 받으려다가 은행으로부터 이달 안에는 대출이 나가기 어렵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고객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결혼을 앞두고 배우자와 함께 주택담보대출을 알아보던 회사원 강인선(가명, 29)씨는 "얼마전 은행에서 상담했을 때만 해도 금새라도 5% 초반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갑자기 이달 안에는 대출이 힘들다고 한다"며 "다음달에 받을 경우 금리가 더 오를 수 있다고 하니 손해가 클 것으로 보인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고객들의 불만에 시중은행들도 딱히 대책이 없어 안타깝다는 반응.
한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담당자는 "실수요를 가진 고객의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다른 준비는 하고 있는 것이 없지만 최대한 실수요자에 불편은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 담당자도 "이번 조치의 가장 큰 피해자는 주택마련이 시급한 실수요자들이 될 것"이라며 "관치금융도 아니고 집값잡기를 이런 식으로 해결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번조치가 오랫동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