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는 미국발 금융위기 앞에서 역설적이게도 대부분의 통화가 달러화에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 가운데 특히 최근 원화 약세가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한동안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으로 강세를 보였던 엔화도 최근 주춤한 상황이지만 원화는 그보다 더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엔-원 환율은 100엔당 장중 1600원선을 넘어서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냈다.
◇ 한때 1600원 돌파..`원화 약세 탓`
엔-원 환율은 실제 거래되는 환율이 아니라 달러-원 환율과 달러-엔 환율로 계산한 재정환율이다. 따라서 수급이 아닌 달러 대비 원화와 엔화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된다.
최근 엔-원 환율이 고공비행한 것은 엔화 보다는 원화 약세에 기인한다. 서울 외환시장 마감 무렵 달러-엔은 94.15엔으로 전일보다 오히려 0.69엔 올랐지만 달러-원이 25원 급등하면서 1506원으로 올라서자 엔-원 환율도 사상 최고치로 치솟은 것.
김영삼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엔화가 살짝 약세를 보였지만 원화는 더 큰 폭의 약세를 나타냈다"며 "동유럽발 위기감과 유럽계 은행에 대한 불안감에 역외 달러 수요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고조되면서 안전자산인 달러화가 대부분의 통화에 대해 강세를 보였지만 특히 원화에 대해 더 강한 모습을 나타내면서 엔-원 환율을 끌어올린 것이다.
◇ 엔-원 추가 상승에 무게..원화가 문제
김 연구원은 "동유럽 금융위기나 금융권 불안감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달러-원 환율이 하락으로 돌아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엔-원이 더 오를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엔화까지 다시 강세를 보일 경우 엔-원 환율 상승세는 더욱 거침없을 것으로 보인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3월과 4월에는 계절적 요인으로 해외 투자에 따른 이자나 배당소득이 유입되면서 엔화가 강세를 보일 수 있다"며 "엔화가 더 강세로 갈 가능성은 남아있다"고 말했다.
다만, 엔화가 오른다고 해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일본 경제가 여느 국가 못지 않게 침체를 겪고 있는 만큼 큰 폭으로 오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게 사실이다.
지난해 4분기 일본 경제성장률은 -12.7%까지 떨어졌을 정도로 움츠러들었다. 일본 경기회복의 주역이었던 수출은 선진국 뿐만 아니라 신흥국에 대해서도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작년 4분기에 전기비 13.9% 감소했다.
배 연구위원 역시 "일본 무역수지 적자와 기업 실적악화 등으로 봤을 때 엔화 강세가 일방적으로 진행되기는 어렵다"며 "4월이 지나면 엔화 방향성이 결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전승지 삼성선물 애널리스트는 "일본 경제가 좋지 않고 이제 엔화가 아니라도 저금리 통화가 많아 엔캐리 청산도 정점을 지나고 있다"며 "엔화가 예전처럼 강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