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에 서명하게 될 반(反)이민 행정명령이 실리콘밸리 IT기업들을 겨냥하고 있어 양측 간 갈등이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구글 페이스북 세일즈포스닷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실리콘밸리 대표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국가 원칙에 위배되며 혁신 성장동력을 위협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30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IT기업들의 취업비자 프로그램을 철저히 조사하기 위해 행정명령 초안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여기엔 전문직 취업비자(H-1B)를 비롯해 주재원 비자(L-1), 소액투자(E-2) 및 임시 상용비자(B-1) 등이 포함됐다. 이번 행정명령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비자 프로그램의 투명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비자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기업들은 정부 회계연도 1개월 이내에 이민자들에 대한 통계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오바마 행정부 때 이에 대한 정보요구가 축소됐고 일부 정보들은 법으로 공개가 제한되기도 했다.
미 의회도 비자 프로그램 개선에 나섰다. 조 로프그렌 캘리포니아주(州) 민주당 하원의원은 지난주 H-1B 비자 프로그램 요건을 강화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연봉을 많이 주는 업체들에게 전문직 취업비자 H-1B를 우선적으로 배정하는 방식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영특한 인재를 찾아내 미국 노동시장에 재능있고 고도로 숙련된 고임금의 근로자를 수혈하겠다는 H-1B 비자의 본래 취지에 다시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자동차 제조업체부터 하이테크놀로지 기업까지 미국에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도록 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와 궤를 같이한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서명한 반이민 행정명령에도 “이민정책은 미국 국익을 최우선으로 설계되고 실행돼야 한다”고 적혀 있다. 또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비자 프로그램은 미국 노동자 및 합법적인 거주자 보호가 우선시되는 방식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최근엔 미국인이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저렴한 임금으로 해외 노동자를 들여오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반론도 있다. 2014년 기준으로 H-1B를 통해 가장 많은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상위 5개 기업은 인포시스와 위프로 등 인도의 타타컨설턴티서비스가 이끄는 아웃소싱 회사들이었다. 이들은 대기업 기술부서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해외 근로자 대부분이 인도인이었다. 이들 업체 때문에 정작 전문인력이 필요한 다른 기업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 기업에서 H-1B를 통해 고용된 외국인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7만달러 미만으로 10만달러 이상인 애플 구글 MS 등보다 현저히 적었다. 론 히라 하워드대 교수는 “미국 기업들이 고도로 숙련 직원을 고용한 반면 인도 아웃소싱업체들은 임금이 저렴한 인재를 찾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도 기업들은 전문인력 덕분에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향후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면 인도 현지에서 싼 노동자들을 고용해 더 많은 일을 원격 처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랜드손튼인디아의 라라 라히리 파트너는 “행정명령이 발동되면 인도 IT기업들은 클라우드 컴퓨팅이나 인공지능 등과 같은 새로운 종류의 서비스로 전환하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진 뒤 H-1B 비자 프로그램을 애용하는 코그니전트 테크놀로지 솔루션즈 주가는 4.4% 하락해 4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