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다른 두 개의 클래스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건 무척 진귀한 기록이었던 만큼 다른 선수들은 박동섭의 두 클래스 우승을 자신의 일처럼 크게 축하했다. 박동섭은 경기가 끝나고 공식 기록은 나오지 않았으나 잠정 우승으로 두 클래스의 포디엄 최정상에 올라 샴페인 세레머니까지 모두 끝마치고 기분 좋게 짐을 챙겼다.
공식 결과의 발표와 함께 선수들과 대회 관리자들의 SNS는 대회의 최종 결과에 분노로 가득했다. 선수들은 난생 처음 듣는 ‘경미한 그리드 정렬 위반’과 ‘5초의 패널티’에 대해에 대한 비아냥 섞인 비판과 박동섭에 대한 패널티 부여에 있어 공식적인 절차 또한 없었다며 대회와 심사위원회에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2016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신설된 KSF의 특별 규정에 포함되어 있는 그리드 정렬 규정에 따르면 차량의 어떠한 부분도 그리드 내측선을 초과할 경우 그리드 정렬 위반으로 정의하고 있다.
박동섭의 경우 다른 차량들 보다 비교적 그리드 라인 오른쪽에 붙어 정렬을 했기 때문에 사이드 미러가 내측 선을 초과했을 수도 있으며 또 타이어가 내측선에서 뻗어나온 ‘가상의 연장선’을 밟았을 확률도 있다.(그리드 라인의 연장선으로 보이는 얇은 선은 서킷 측의 임의대로 그린 선이며 정식 그리드 라인은 아니다.) 이에 따라 공식 결과에 따라 ‘그리드 정렬 위반’이라는 규정 위반은 성립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경미한 그리드 정렬 위반과 이에 따른 5초의 패널티는 규정에 정의된 위반 항목과 징계일까? 통상 그리드 정렬 위반의 경우에는 드라이브 스루와 같은 경기 중 패널티가 부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심사위는 ‘그리드 정렬 위반’과는 다른 ‘경미한 그리드 정렬 위반’이라는 내용을 부여했다.
이 즈음 하나의 속담이 떠오른다. ‘오십보백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백보를 도망간 사람이나 오십보를 도망간 사람이나 도망한 사실에는 양자의 차이가 없다’라는 것이다. 즉 경미한 그리드 정렬 위반이나 그리드 정렬 위반은 결국 ‘차량이 서야 할 규정에 맞춰 정지하지 않았다’라는 같은 위반이라는 것이다.
대회 측은 경기 초반 발생한 규정 위반 행위에 대해 빠른 판단을 내려 경기 종료 후 불필요한 시비를 없앨 수 있으며 규정을 위반한 선수는 자신에게 부여된 패널티를 경기 초반에 이행하여 이후 경기에 대한 운영 방식이나 전략을 빠르게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의 일은 달랐다.
인제 스피디움 A코스(2.577km)를 총 23랩 달리는 이번 결승에서는 박동섭을 외에도 최정원과 성기주 등 몇몇의 선수들이 그리드 정렬 위반 및 ‘경미한 그리드 정렬 위반’으로 패널티를 받았다. 그런데 이들이 패널티를 지시 받은 건 경기 후반이라 할 수 있는 16랩 이후였다. 경기 후반 완주를 위해 페이스를 조절하던 선수들에게는 날벼락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또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 보통 경기가 끝나면 잠정 기록이 나오고 경기 중 미처 심사를 끝내지 못한 항목에 대해 심사가 진행 중 임을 알린다. 이에 선수들은 공식적인 항의 절차를 거쳐 다른 선수의 규정 위반을 신고한다. 현재 대회에서 인정하는 공식적인 항의 절차는 정해진 양식의 항의서를 작성하여 ‘항의금’과 함께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경기의 잠정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박동섭에게 ‘그리드 정렬 위반으로 심사가 진행 중이다’라는 내용이 전달되지 않았고, 잠정 기록지에도 박동섭의 그리드 정렬 위반으로 심사가 진행된다는 내용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박동섭의 그리드 정렬 위반’에 대한 공식적인 항의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복수의 선수들은 ‘박동섭의 그리드 정렬 위반에 대한 항의가 구두 항의였다’라고 증언했다. 기자 역시 해당 경기 관련으로 공식 항의가 있었는지 취재를 했고 공식 항의 절차를 통해 접수된 항의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그리드 정렬을 확인하고 이상이 있는 차량을 상부에 보고하는 오피셜의 보고서 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즉 대회 심사 측은 잠정 기록지 공지 때까지도 존재하지도 않았던 내용을 잠정 결과 발표 이후 특정 선수의 효력이 없는 구두 항의를 기반으로 추가 심사를 진행한 것이다. 이는 상호간의 규정 아래 대회를 치르고 결과를 산출하는 레이스에서 대회와 선수 사이의 신뢰를 훼손하는 최악의 행위라 할 수 있다.
한편 박동섭은 28일 오전 해당 심사 결과에 대한자동차경주협회에 공식적인 항소를 신청했고 이에 따라 항소위원회가 해당 사안을 심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동섭은 전화 통화를 통해 “대회 상금이 150만원인데 350만원을 납부해야 하는 항소를 결정하기까지 며칠 동안 고민했다”라며 심경을 밝혔다.
이번 사태에 따라 KSF에 출전하는 선수들 사이에서는 대회에 대한 불신의 표현으로 대회 보이콧까지 언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해당 선수는 “KSF가 예전부터 심사에 관해 불투명한 절차와 운영이 잦았는데 이번 일로 그 분노가 폭발한 것 같다”라며 “KSF에 출전하는 복수의 선수들이 대회 보이콧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일을 취재하며 2016 KSF 특별 규정에 정의되어 있는 ‘그리드 정렬 불량’에 관한 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수들은 해당 규정을 모두 확실히 지켜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해당 규정을 살펴 보았을 때 규정이 무척 모호하고 그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회 측은 올바른 그리드 정렬과 올바르지 못한 그리드 정렬을 단 세가지 예시로 표현하고 있으며 해당 정렬에 대한 성문화 되어 있는 내용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 서킷마다 그리드 폭이 다를 수 있고 경기 차량에 따라 전폭이 달라 그리드 라인을 초과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제하고 있다.
이번 일에 대해 모터스포츠 한 관계자는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과 대회는 신뢰가 무척 중요하다”라고 말하며 “신뢰는 친분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규정과 확실한 절차를 지키는 것에서 시작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일은 그 동안 ‘모호하게 운영되어 온 한국 모터스포츠의 부끄러운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설명하며 “이번 일을 계기로 규정된 절차에 따른 대회 운영을 통해 공정성 논란에서 탈출하고 한 단계 발전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진: KSF, 한국모터스포츠기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