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 바다이야기 게임장의 24시간... 1시간에 10만원 ''꿀꺽''

아침에 남들 출근할 때 게임장 퇴근
밤에는 횟집인 줄 알았다가 발 묶여
  • 등록 2006-08-22 오후 9:15:48

    수정 2006-08-22 오후 9:15:48

[오마이뉴스 제공] 전국이 때아닌 파란 물결에 휩싸였다. 시원한 바닷물 배경에 물고기떼가 헤엄치는 간판. 언뜻 보면 횟집처럼 보이는 '바다이야기'로 2006년 여름 대한민국은 포위당했다.

도심, 주택가, 대학가, 초등학교 앞 골목, 농촌까지 바다이야기는 깊게 뿌리를 내렸다. 2004년 12월, 바다이야기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누구도 이처럼 큰 인기를 거두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전국에 흩어져 있는 1만5000여 곳의 성인오락실 중 바다이야기는 무려 70%를 장악했다. 전국의 편의점수(9000개)와 맞먹는 규모다. 바다이야기 판매, 유통 업체인 지코프라임은 지난해 매출액 1215억원, 순이익 160억원의 경이적인 실적을 올려 최근에는 코스닥에 입성하기도 했다.

21일 오전 7시부터 이튿날인 22일 새벽 2시까지 <오마이뉴스> 취재진은 시간대별로 동작구, 서대문구, 종로구에 위치한 바다이야기 게임장 표정을 살펴봤다. 바다이야기로 세상이 시끌벅적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게임기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도박에 빠진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이른 아침 남들 출근할 시간에 게임장을 나서 사우나로 향하는 이들. 점심을 적당히 때우고 게임장에 올인하는 직장인들. 2, 3차 회식이 이어지면서 이곳을 횟집으로 착각하고 들어오는 취객들. 동트기 전 새벽, 가진 돈을 전부 탕진하고 택시비가 없어 짝을 지어 택시를 타고 가는 이들. 대학생은 물론 심지어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이들까지도 바다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한 마디로 '도박공화국'이 따로 없었다.

[오전 8시] 남들 출근할 때 우린 사우나로

월요일인 21일 오전 8시 서울 동작구의 한 바다이야기 게임장.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희뿌연 담배연기에 '턱' 하고 숨부터 막혀왔다. 밖에서 바라다본 '파란색 간판' 못지않게, 게임장 안의 풍경 또한 파란색 일색이었다. 50여 대의 게임기 모니터에서는 연신 파란 바다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대개 출근 준비를 하거나, 출근길에 오를 시간이지만 이곳에서 밤을 샌 이들에겐 지금이 '퇴근' 시간이다. 또 24시간 영업을 하는 게임장의 경우에는 종업원들이 청소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곳 손님들은 주변의 사람들과 안면을 트고, 같이 사우나를 가거나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기도 한다.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 근처에 살며 노동일을 하고 있다는 김아무개(39)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37번 게임기하고 46번에서 오늘 고래가 터졌어요. 밤에 다시 오면 가급적 그쪽은 피해서 게임을 하는 게 좋아요. 확률상 한 번 터진 곳에서 다시 터지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지난달까지 막노동일을 하다가 지금은 무직이라는 40대 중반의 한 손님은 "어젯밤 8시쯤 들어와 꼬박 12시간을 하고 나서는 길"이라고 말했다.

"한 30만원쯤 잃었을까. 막판에 거북이들이 둥둥 떠다녔는데, 밑천이 바닥나서.(게임기에 거북이가 나오면 고래가 나올 확률이 높음을 예시하는 것)"

이제 "어디로 갈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가긴 뭘, 이 앞 사우나서 잠깐 눈 좀 붙이고 다시 와야지"라고 짧게 답했다.

[낮 12시] 라면으로 점심 때운 직장인들 속속 들어와

바다이야기 게임은 기본적으로 1만원부터 시작된다. 1만원을 넣으면 100게임을 할 수 있다. 게임 한 번당 100원씩 빠진다. 보통 1게임에 걸리는 시간은 4초 남짓. 1만원이면 6~7분 정도가 소요된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매번 버튼을 누르기가 지겨워 시작 버튼 위에 라이터를 올려놓아 자동으로 게임이 계속되도록 했다.

낮 12시가 넘어서자 말쑥하니 양복을 차려입은 이들이 속속 게임장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사발면 등으로 점심식사를 간단히 해결하고, 점심시간 내내 바다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이들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들어오기 위해 애를 썼다. 게임기마다 확률이 달라 이른바 '잘 터지는 곳'을 얻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노량진역 인근의 한 기업에 다닌다는 손님은 "화투, 포커, 경마는 환한 대낮에 들어가기가 꺼려지지만 바다이야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며 "또 구멍가게처럼 게임장이 많다 보니 어디서든 별 어려움 없이 드나들 수 있다"고 말했다.

업주 입장에서 보면 이들이야 말로 '보배' 같은 우량 손님이다. 짧은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게임을 하다보니 1명이 여러 대를 동시에 사용하기 때문. 보통 한 사람 당 평균 3대의 게임기를 돌린다. 이 경우 한 시간 남짓 하다보면 50만원을 잃는 것은 기본이다.

이곳에서 만난 회사원 고아무개씨는 "예전엔 점심을 먹고 당구장으로 가는 직장인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성인오락실을 찾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며 "일부는 게임에 빠져들어서 오후 근무 시간에 늦게 들어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후 4시] 대학가 젊은이들도 도박중독에 빠져

오후 4시 이번에는 대학교가 밀집돼 있는 신촌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촌 유흥가 주변에만 성인오락실이 줄잡아 50여 곳이 들어서 있다. 바다이야기는 이곳에서도 단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바다이야기는 젊은이들마저 도박 중독으로 끌어들였다.

대학생 차림의 한 손님은 "파란색 모니터를 비롯해 디자인이나 분위기가 게임방에 온 것 같고 젊은 감각에 딱 맞다"며 "지금껏 성인오락실 하면 떠오르는 어두컴컴하고 칙칙한 분위기는 바다이야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 바다이야기는 대학생들 손에서 처음 나왔다. 이 게임기의 핵심인 확률 프로그램을 만든 이들은 서울대 전기공학부 학생들.

기자도 종잣돈 5만원을 들고 이들 틈에서 직접 '실습'에 나섰다. 옆자리 손님에게 "처음 해보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대뜸 "처음 하는 거면 하지 마쇼"라는 대답이 날아왔다. 그는 "나야 이미 '망가진' 상태지만 처음 하는 거라면 극구 말리고 싶다"고 말했다.

결국 그곳 종업원의 도움을 받아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돈을 넣기만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기계가 전부 알아서 해준다. 한 번 게임할 때마다 시작 버튼을 새로 눌러야 하지만 이마저 시작 버튼 위에 라이터를 올려놔 '오토화' 시켰다.

종잣돈 5만원을 전부 탕진하는데 걸린 시간은 채 1시간이 안됐다. 손에 쥔 거라곤 달랑 5000원짜리 상품권 한 장. 게임장 밖 한쪽에 마련된 상품권 교환소에서 수수료(장당 500원)를 떼고 4500원을 챙겨 나왔다.

대학가 주변 바다이야기에는 종종 등록금을 게임에 쏟아 부어 모두 잃고 난 뒤 부모 몰래 휴학을 하는 이들이 눈에 띈다. 도박 중독자들의 자발적 치료모임인 한국 단(斷)도박모임 사이트(http://dandobak.co.kr)에는 등록금을 포함해 수천만원을 날린 대학생들의 '바다에 빠진 이야기'가 줄줄이 올라와 있다.

[밤 10시] 취객들, 횟집으로 착각하고 들어와

밤 10시 취재진은 종로3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게임장은 다시 활기를 뗬다. 보통 하룻밤을 꼬박 이 곳에서 새우는 이들이 바다이야기로 '출근'을 하는 시간도 이맘때다. 이 시간에 오는 이들은 대부분 '꾼'들이 많아 보통 한 명 당 3~4대의 게임기를 돌린다.

'꾼'들 사이에는 보통 잘 '터지기'로 유명한 게임장이 어느 곳인지 안다. 종로3가에 위치한 이곳도 그 중 하나다. '취재비' 10만원 가운데 남은 5만원으로 다시 '실습'에 들어갔다.

한 20분쯤 모니터를 보고 있으려니 옆자리 와이셔츠 차림의 한 손님의 게임에서 '잭팟'을 알리는 팡파르가 터졌다. '런던보이스'의 '할렘 디자이어'(Harlem Desire)가 흘러 나왔다. 빈민가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이 노래와 게임장 풍경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이날 오전부터 줄곧 게임장에 있으면서 처음 듣는 팡파르였다. 이 손님의 경우 상어가 나왔다. 고래가 나오면 50만~300만원 정도를 딸 수 있지만 상어가 나오면 당첨금은 뚝 떨어진다. 하지만 이런 승률조차 채 10%를 넘지 않는다. 결국 대박을 터뜨릴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한 손님이 서너대의 게임기를 독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밤 11시가 넘어서자 일부 취객이 횟집으로 착각하고 들어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이렇게 횟집으로 착각하고 들어왔다가 처음 발을 들여놓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귀띔해준다.

한 손님은 "친구들과 2차로 술 한 잔 하려다 간판에 그려진 바다와 물고기를 보고 횟집인 줄 착각하고 들어온 적이 있다"며 "들어온 김에 한 게임 한다는 게 1시간 만에 50만원을 따면서 이곳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100원 베팅으로 5000원짜리 상품권 100장을 손에 거머쥔 적이 있다"며 "당시 기분은 마치 월척을 낚았을 때의 느낌"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 '손맛'이 이 손님을 바다이야기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새벽 2시] "택시 같이 타고 가실 분 없나요?"

밤 12시를 넘기자 여기저기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들 대부분은 몇 시간 째 고래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다. 바다이야기로 세상이 온통 시끄럽지만 이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낮 시간대 손님들이 10만원 안팎을 판돈 삼아 게임을 즐기는 부류가 많다면, 이 시간대에 남아 있는 이들은 대부분 뭉칫돈을 손에 쥐고 눈에 핏발을 세운 도박중독증 손님들이다.

새벽 2시가 넘어서자 손님의 절반 이상이 빠져나갔다. 지금도 남아 있는 이들이 '진짜 꾼중의 꾼'이다. 이때가 되면 게임장 주변에서 손님들끼리 짝을 맞춰 택시를 잡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주로 종로와 강남 일대의 바다이야기 같은 성인오락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웬만한 이들은 택시비까지 털어 게임비로 탕진한 터. 택시비를 줄이기 위해 여러 손님들이 돈을 갹출해 택시를 함께 타고 서로의 목적지에서 내린다.

게임장 문을 나서는 한 손님을 슬쩍 잡아 세웠다. "오늘 좀 벌이가 좋았냐"는 질문에 그는 대답은 않고 연신 침만 내뱉었다. 상품권을 교환하러 가는 길에 비교적 '길게' 이 손님과 얘기를 나눴다.

"끊으려고 무척 노력도 많이 했지. 한 보름간 발길을 끊은 적도 있었어. 그런데 밤만 되면 ('잭팟'을 알리는) 팡파르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에 고래와 상어떼가 아른거리고. 결국 다시 이곳으로 발걸음을 하게 됐어."

바다이야기의 24시간은 이렇게 계속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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