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전략)이코노미스트의 변심은 유죄(?)

  • 등록 2003-08-28 오후 3:40:31

    수정 2003-08-28 오후 3:40:31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한국은행이 경제 전망을 너무 자주 바꾼다고 기자들이 힐난하자, 전철환 전 한국은행 총재는 "예측하는 사람은 불행하다"는 명언을 남겼다. 요즘 월가에는 변심한 이코노미스트들 천지다. 이들은 앞다퉈 미국의 올해 GDP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2% 성장조차 어림없다"던 이코노미스트들이 4~5%를 떠들고 다닌다.(이 기사는 8월28일 14시29분 edaily의 유료 금융시장 뉴스인 `마켓플러스`를 통해 출고됐습니다) 전 총재의 말대로 이들 이코노미스트는 불행한 사람들이다. 예측이 맞으면 `용하다`고 신기하게 바라보지만, 사람이 어떻게 앞날을 100% 맞추겠는가. 이코노미스트의 일은 그때그때 수많은 경제지표를 분석, GDP 전망치를 올리거나, 내리면서 전망치를 최종 결과치에 근접시키는 것이다. 이런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코노미스트들은 지조가 없다, 결과를 꿰어 맞춘다"며 조롱한다. 여기 월가에서 가장 유명한 `불행한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가 있다. 모건스탠리의 글로벌 이코노믹스 팀을 이끌고 있는 로치는 이 주 초 올해의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8%로 상향 조정했다. 2주 동안 휴가를 다녀온 후 나온 그의 첫 보고서였다. 변심한 이코노미스트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내년도 세계 성장률은 3.8%로 그대로 뒀다. 로치 당신마저...그러나 그의 리포트를 자세히 읽어보니, 아직 완전한 변심은 아니었다. 전망치를 올렸지만, 자신이 아직도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더 많은 부문을 할애했다. 로치가 세계 경제 성장률을 높인 이유는 일본 때문이다. 일본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1.4%에서 2.0%로 올라가면서 전체적인 조정이 필요했던 것. 그는 일본의 2% 성장을 절대로 높은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상향 조정된 성장률 전망치는 왕성한 회복이라고 보기 어렵다(This upwardly revised global growth forecast hardly paints a picture of vigorous recovery.)"고 썼다. 회복이 된다지만 무기력한 성장(anemic recovery)이라는 것. 로치는 글로벌 이코노미의 동시다발적인 회복이 어려운 이유로 3가지 제시했다. 3가지 이유는 로치의 특허인 더블딥, 불균형론 그대로였다. 첫째 글로벌 이코노미의 성장 동력인 미국 경제는 아직도 90년대 버블의 찌꺼기를 청소하지 못했다는 것. 둘째, 글로벌 링키지(Global Linkage)에 묶여 유럽, 일본, 아시아 경제가 내수 확장과 같은 자생력을 잃었다는 것. 셋째,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와 같은 불균형이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로치는 지조를 지키며 비관론자의 길을 고집하고 있었다. 이코노미스트에게는 `변심`의 특권이 있다. 그 특권 때문에 조롱 당하고, 불행할 수 있지만 전망치를 유연하게 수정하는 것은 이코노미스트의 권리이자 의무다. 로치가 성장률 전망치를 높이고도 `자신의 생각`을 고치지 않는 것은 더 큰 불행을 자초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자신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터닝 포인트다`라고 외치는 것은 예측하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무시무시한 도전이다.(Calling turning points is always the most formidable challenge for any forecaster.) 분석자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분석의 틀이 자각능력을 마비시킴으로써 그같은 도전은 더욱 어렵게 된다. 그 틀 자체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없도록 만들 수도 있다.(That challenge often gets complicated by the self-perceived rigor of the forecaster"s analytical framework -- those proverbial inted glasses that all too often make it hard to see the world differently.) 나역시 한동안 미국 중심주의의 불균형을 강조하는 분석의 틀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I certainly confess to such biases -- having been wedded for some time to a framework that stresses the persistent imbalances of a US-centric world.)" 더블 딥으로 유명세를 탄 이코노미스트가 "지금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경제가 회복된다"고 말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수년간 가지고 있던 분석의 틀을 한순간 폐기처분할 수 있겠는가. 로치도 자신의 함정이 무엇인지 알고 냉정하게 이것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Fortunately, I have had the benefit of two weeks of mindless holiday that enable me to be a bit more open minded in coming up with a fresh perspective on the global outlook. And so in the spirit of thinking outside of my own box, allow me to probe the possibility of a synchronous recovery in the global economy.) 그러나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 로치는 도저히 `변심`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자신의 생각을 바꿀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거나,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르겠다. 로치는 솔직히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는 전형적인 경제성장에는 회의적이지만, 일시적인 가속 성장은 가능할 것이라고 시인했다.(As a card-carrying growth skeptic, even I concede that bouts of temporary acceleration are possible.) 로치는 "지난 4년간 글로벌 이코노미를 놓고 논쟁을 벌이면서, 언젠가 세계 경제가 안정적이고, 활기찬 모습을 보일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로치는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라며 리포트를 끝마쳤다. 그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세상은 벌써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이코노미스트의 변심은 유죄가 아니다. 그렇다면 변심을 잘 못하는 이코노미스트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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