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양효석기자]
지난 98년 6월 처음 도입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제도가 만 5년째를 맞았습니다. 그동안 워크아웃을 신청했던 108개 기업 가운데 단 12개 기업만이 워크아웃의 울타리에 갇혀있을 뿐입니다. 경제부 양효석 기자는 지난 5년간의 가혹한 금융·기업구조조정이 우리나라 금융권에서 미처 생각치못한 의외의 결실을 맺고있다고 분석합니다. 왜 구조조정과 개혁이 중단돼선 안되는지에 대한 해답을 여기서 찾기도 한답니다.
지난해말 우리은행과 산업은행은 각각 성창기업과 남선알미늄을 워크아웃에서 각각 조기 졸업시켰습니다. 그동안의 막대한 부담을 생각하면 모두들 부담스런 혹을 떼어버린 시원한 느낌만 남았겠죠.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워크아웃이 탄생했던 외환위기 수습과정이 떠올랐습니다. 법정관리나 화의 등 종전 기업회생제도의 `거북이 걸음`을 조금이라도 재촉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게 바로 워크아웃이었죠. 조기졸업생들을 배출해낸 은행들 입장에선 `지긋지긋한 워크아웃에서 우리도 벗어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97년말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의 길고 어두운 터널에 들어가면서 시작된 기업구조조정이 `상시체제`로 정착하면서 워크아웃을 진행중인 기업은 이제 12개에 불과합니다. 주채권은행별로 보면 산업은행의 새한, 조흥은행의 쌍용건설·쌍용자동차·동방생활, 우리은행의 KP캐미칼(고합)·새한미디어·갑을·대우통신·대우전자, 제일은행의 동국무역, 하나은행의 미주제강, 외환은행의 오리온전기 등이죠. 12개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당사자인 은행들로선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돌덩이를 달고있는 심정이겠지만요.
어쨌든 그동안의 기업회생 작업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은행들은 이제 워크아웃 추진과정에서 출자전환 등으로 갖게된 지분을 팔아 기업에 새 주인을 찾아주어야할 상황입니다. 채권은행들로선 지분보유가 기업경영을 목적으로 한게 아닌 만큼 채권만 회수하고 경영은 새로운 주인에게 맡겨야 할 단계에 와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해당 금융기관의 정성과 능력에 좌우되겠죠.
그러나 정작 지금 시점에서 우리 경제계가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은 바로 은행권이 그동안의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터득한 노하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것입니다. 탈출구는 바로 구조조정 노하우를 해외시장 진출의 최신무기로 삼는데 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 은행들은 최근 무척이나 인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있습니다. 산업은행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쌓아온 신인도와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외에서 부실채권 처리와 기업회생에 관한 컨설팅을 실시할 계획을 갖고있습니다. 한국자산관리공사도 올해 일본, 대만 등 아시아 부실채권시장에 본격 진출해 가시적 성과를 거두겠다는 목표를 세웠다죠.
호된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를 활용하려는 우리 은행권에겐 거대한 시장이 바로 우리 옆구리에 있다는 점도 고무적입니다.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의 경우 공공 금융기관 여신 가운데 부실채권이 최대 30~40%에 이를 것이란 얘기도 있습니다. 중국이 부실채권을 어떻게 하면 조용히 처리할 까를 깊이 고민하는 건 당연합니다. 중국 금융당국은 지난 2000년말 현재 대출총액의 25.37%에 달하는 4대 국유은행의 부실대출비율을 오는 2005년까지 15%대로 낮춘다는 계획 아래 구조조정을 실시한다는군요.
지난해 상하이에서 열린 ADB(아시아개발은행) 연차총회에서 중국이 우리나라 대표단을 극진히 대접하며 듣고싶었던 얘기가 바로 우리의 구조조정 경험이었고 노하우였음은 이미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중국의 어떤 고위인사는 우리 대표단중 한 인사에게 무척이나 `솔직하게` 중국의 실상을 토로하고 도움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암울했던 IMF 시대를 겪으며 정치권이 `수십조, 수백조원의 공적자금을 허공에 날렸다`고 입에 거품을 무는 동안 우리 금융권은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유용한 학습을 했던 겁니다. "국부(國富)가 유출됐다"고 아우성치기 보다는 "국부를 늘릴 토대를 쌓았다"고 평가하고 새 시장을 만들어나갈 때입니다. 우리는 그럴 능력을 갖추고있다고 봅니다. 이제 구조조정은 생활입니다. 정치쪽에선 `개혁`이 일상화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