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세종대왕과 컴퓨터 바이러스

  • 등록 2002-02-07 오후 7:58:42

    수정 2002-02-07 오후 7:58:42

[edaily] 메일함을 열기가 겁날 정도로 컴퓨터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백신도 여러 가지가 개발됐지만 늘 바이러스는 한 수 위인 듯 합니다. 산업부 이진우 기자가 컴퓨터 바이러스 홍수속에서 느꼈던 세종대왕의 고마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번 들어보시죠. 늘 이메일을 끼고 사는 저지만 요즘처럼 메일함을 열어보기가 겁났던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스팸메일에 대해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닙니다. 스팸메일은 차라리 귀엽기나 하죠. 요즘은 대부분의 바이러스가 이메일을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상한 제목으로 위장을 한 터라 호기심에 살짝 열어보면 그 순간 영락없이 바이러스가 작동합니다. 잘못 걸린 전화는 가끔 통화중이라도 되지만 잘못 열어본 메일은 꼭 대가를 치르게 되죠. 예전에 명함을 주고 받았던 사람들중에는 "바이러스 때문에 데이터를 날렸다"며 명함을 다시 달라고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습니다. 컴퓨터로 해야할 일이 좀 안풀리거나 일을 제시간에 못 맞췄을 경우는 "바이러스에 걸려서…"라고 하면 꽤 그럴듯한 핑계로 인정해주기도 하죠. 약속시간에 늦었을 때 "교통이 막혀서"라는 핑계를 대는 것과 비슷하죠. 그만큼 바이러스는 이제 일반화된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컴퓨터 바이러스로 인해 기업들이 입는 손실이 50조원에 이른다는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요즘 바이러스중에는 잘못걸리면 하드디스크를 몽땅 밀어버리고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다시 깔아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바이러스는 사실 우리나라보다 미국 등 외국에서 더 난리라고 하더군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위대한 임금, 세종대왕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메일로 전해지는 컴퓨터 바이러스는 대개 아주 자극적이거나 유혹적인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겁니다. - Hot clips for U. - A very new game. - Congratulations! 어떻습니까? 자극적인가요? 사실 이게 영어로 쓰여 있으니까 좀 어색해보여도 실제 속뜻을 생각해보면 매우 유혹적입니다. 열어보지 않을 수 없죠. 바로 이런 뜻이니까요. - 당신을 위한 뜨거운 동영상. - 최신 게임을 드립니다. - 축하합니다. 당첨되셨습니다. 2년전에 전 세계를 강타했던 러브바이러스의 위력도 바로 제목(I love You)에서 느껴지는 고혹스러움에서 나온 겁니다. 누군지 모르는 미지의 이성이 나를 사랑한다는데 그냥 넘어갈 사람은 없겠죠. 요즘 돌아다니는 바이러스는 대부분 그 아류작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사는 우리는 피부로 느끼지는 못할 지라도 영어를 안쓰는 덕에 바이러스의 피해에서 상당 부분 자유로운게 사실입니다. 적어도 나를 사랑하는 "영자"나 "말식이"가 보낸 메일이라면 "사랑한다" 또는 "오늘 오빠가 너무 보고싶어" 정도면 되지, 굳이 못하는 영어로 "dear my love" 따위를 적을 리가 없기 때문이죠. 짐작하시겠지만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오신 분들이나 영어에 익숙하신 분들은 바이러스에 더 자주 걸린다고 하네요. (역시 세상은 공평한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바이러스가 돌면 "이상한 영어제목의 메일은 열어보지 마세요"라고 공지하면 그만입니다. 우리가 만약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정말 대책이 없었을 겁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낸 메일은 열어보지 마세요"가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 메일을 보내는 사람의 절반 이상은 모르는 사람 아닙니까? 요즘은 스팸메일이나 성인용 사이트 광고메일이 이런 수법을 사용합니다. "오빠 오늘 나한테 죽었어" "Re: 부디 저를 도와주세요", "저의 모든 것을 보여드립니다", "한달 후 당신에게 6억을…" 이런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쏟아지는 메일은 그러려니 하면서도 한 두 개씩은 열어보지 않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아마 컴퓨터 바이러스 메일이 한글제목을 달고 돌아다녔다면 저는 하루에도 수십 번 씩 컴퓨터를 다시 깔고 있었을 겁니다. 솔직히 사나이가 산수갑산을 가더라도 "부디 도와달라"는데,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데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영어 때문에 온 국민이 스트레스를 받고 살지만, 어학연수가 의무교육의 하나고 이민 가는 것이 공통된 꿈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영어를 못하는 덕(?)을 볼 때가 바로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날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세종대왕을 왜 항상 "대왕"이라고 부르는지 요즘에야 좀 알 것 같습니다. "나랏말이 미국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맏디 아니할세 어린 바이러스가 이루고져 할뻬 이셔도 제뜯을 시러 펴디 못할 노미 하니라..." 한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영어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으십니까? 컴퓨터 바이러스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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