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두산인프라 인수전 뛰어든 KDB인베…“현중 직접 설득”

産銀자회사, 두산인프라 인수 참여에 시장 '갸우뚱'
KDB인베스트먼트 "현중 직접 설득…구조조정 마중물"
산은과 현중 인연·이대현 대표 존재감도 주목
  • 등록 2020-10-05 오전 11:01:30

    수정 2020-10-06 오전 11:02:29

현대중공업지주·산업은행 콜라보 이번에도 성공할까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현대중공업지주(267250)가 KDB인베스트먼트(이하 KDB인베)와 손잡고 두산인프라코어(042670) 인수전에 뛰어들자 인수·합병(M&A) 시장의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국책은행 자회사인 KDB인베의 참여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해 충돌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두산그룹 구조조정에 간여하는 주채권은행이 KDB인베의 모회사인 KDB산업은행이어서다. 구조조정의 심판(산업은행)이 직접 매각 대상인 자산을 사겠다며 선수(KDB인베)로 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두산인프라 인수전에 출사표를 낸 다른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들러리만 서게 됐다는 불만도 나온다.

“누가 봐도 모양새가 이상합니다. 두산그룹의 구조조정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채권은행이 산업은행인데, 그 100% 자회사가 전략적 투자자(SI)와 두산의 매물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니까요.”

투자은행(IB)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중동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50t급 대형 굴착기 (사진=연합뉴스)


“KDB인베스트먼트, 네가 왜 거기서 나와”

KDB인베의 설명은 다르다.

5일 KDB인베스트먼트 관계자는 “우리가 시장 조사를 해보니 성장 산업인 두산솔루스(336370) 등과 달리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우 경영권 인수에 관심 있는 대기업 등 전략적 투자자(SI)가 아무도 없었다”며 “현대중공업지주도 인수전 참여를 많이 망설였지만, 우리가 꾸준히 설득해 최종 결심을 끌어냈다”고 했다.

KDB인베는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업무 전담 자회사로 지난해 4월 출범했다. 산업은행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떠안은 부실 회사를 전문적으로 관리해 정상화한 뒤 시장에 되파는 것이 주요 업무다. 산업은행으로부터 보유 지분을 넘겨받아 현재 체질 개선을 추진 중인 대우건설(047040)이 대표적 사례다.

반면 두산인프라코어는 매년 3000억원대 영업이익(자회사 두산밥캣 실적 제외)을 올리는 정상 기업이다. 비록 모그룹이 자금난을 겪으며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시장에 매물로 나왔으나 애초 산업은행이 경영권을 갖고 있거나 구조조정이 필요한 회사가 아니다. KDB인베가 인수전에 뛰어들 명분이 약한 셈이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KDB인베, 최적 인수자 찾아주는 ‘구조조정 마중물’ 자처

그러나 KDB인베는 제 역할을 더 넓게 본다.

KDB인베 관계자는 “만약 인프라코어 매각이 흥행에 실패해 성사되지 않으면 두산그룹 구조조정도 상당히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가 직접 적합한 투자자를 찾아서 거래를 성사시키면 시장 중심 구조조정의 촉매 역할을 하고 산업적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을 거로 봤다”고 설명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국내 건설 기계 시장 1위 업체다. 외국 기업에 매각되면 국내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또 1조원 안팎으로 추산되는 두산인프라 경영권 매각 대금은 두산그룹 정상화의 주요 실탄이 될 전망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KDB인베가 두산인프라에 좋은 주인을 찾아줄 마중물 역할을 자처했다는 이야기다. 현대중공업지주는 그룹 산하에 건설 기계 자회사가 있어서 일찌감치 두산인프라코어의 적격 인수 후보로 꼽혀 왔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경영권 확보 문제 등 때문에 민간 사모펀드 운용사를 선뜻 투자 파트너로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죠. 우리는 산업은행 자회사여서 신뢰할 수 있고 구조조정의 이해도도 높다는 점을 적극 강조했습니다.”

KDB인베가 재무적 투자자(FI)로서 연기금·공제회 등 기관 투자가의 투자금을 조달해 현대중공업지주의 인수 부담을 줄이고 경영권을 보장한 것이 현대중공업 측이 두산인프라 입찰 불참에서 참여로 돌아서는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그래픽=이미나 기자
국내 기업 구조조정 판은 과거 국책은행이 주도하는 관치(官治)에서 시장 중심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에 있다. KDB인베는 현대중공업지주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 참여를 끌어낸 것처럼 민간 사모펀드 등이 하기 어려운 역할을 대신하는 구조조정의 조력자가 되겠다는 청사진을 내민다.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당장 두산인프라의 경영권을 따내려면 MBK파트너스, 글랜우드 프라이빗에쿼티(PE) 등 국내 주요 사모펀드 운용사와 경쟁을 거쳐야 한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KDB인베의 참여로 입찰 참여자 간 경쟁이 붙어 두산인프라 매각 가격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로 사모펀드들이 들러리만 서게 됐다며 일찌감치 인수전에서 발을 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대중공업그룹과 인연 눈길…이대현 대표, 존재감 드러내

KDB인베와 현대중공업지주의 협업으로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그룹 간 인연도 재조명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앞서 지난해 1월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우조선해양(042660)을 인수하기로 했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보유 지분을 현대중공업그룹의 중간 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009540)에 출자하고, 한국조선해양이 다시 산업은행에 신주를 발행해주는 방식이다. 양측의 거래는 한국·EU(유럽연합)·일본·중국 등 4개국의 심사를 거쳐 내년 중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과 두산인프라코어를 모두 품으면 두 회사의 전신인 옛 대우중공업과 대우조선공업도 20여 년 만에 같은 그룹 산하에 다시 모이게 된다. 대우중공업과 대우조선공업은 과거 한 회사였다가 대우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분리 매각된 바 있다.

다만 KDB인베 관계자는 “두산인프라 인수전 참여는 이해 상충 문제를 고려해 산업은행과 논의 없이 자체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며 “현대중공업지주 쪽도 우리가 직접 공을 들여 설득했다”고 강조했다.

이대현(사진) KD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현대중공업지주와의 협업을 끌어내며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산업은행 수석부행장 출신인 이 대표는 작년 KDB인베의 초대 대표로 취임했다.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 참여는 이 대표가 진두지휘하는 첫 M&A 거래다.

KDB인베는 산업은행이 추진하는 한진중공업 매각에도 뛰어들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매각 대상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보유한 한진중공업 지분 83.45%로, 오는 26일 공개 경쟁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다.

산업은행은 한진중공업 지분 16.14%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KDB인베의 한진중공업 인수전 참여가 이해 충돌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재차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시장은 기존 채권단 중심 구조조정과 민간 자본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의 중간 지대에서 역할론을 들고나온 KDB인베의 향후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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