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검증체계 마련을 두고 북미간 협상이 답보상태에 있는 가운데 북측이 초강수를 두고 나온 배경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이 26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10.3합의에 따라 진행중에 있던 우리 핵시설 무력화 작업을 지난 14일부터 중단했으며 특히 영변 핵시설들을 곧 원상대로 복구하는 조치를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변 핵시설 원상복구 검토라는 강경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현재 북한과 미국은 북핵검증체계 마련과 관련해 검증 대상과 방법, 주체등을 놓고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플루토늄 뿐만 아니라 북한과 시리아의 핵협력, 우라늄 농축의혹(HEU) 등을 모두 포괄해 검증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며 검증 방법에 있어서도 문서검증, 과학자 면담, 시설 방문은 물론 샘플채취와 불시방문, 미신고시설에 대한 검증허용이 가능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 6월 26일 핵신고서를 제출한 만큼 의무가 이행됐고 이에따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검증 체계 마련은 다음 단계라는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요구에 대해 거부를 넘어 핵불능화 중단과 원상복구라는 강수로 맞선 것이다.
이와관련해 외교통상부 고위 당국자는 "북의 의도를 추측해보면 이 단계에서 과잉반응을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하겠다는 의도만 밝힌 채 실제 해제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긴장을 고조시켜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끌고가겠다는 차원에서 자극적 조치가 나온 것 같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6자회담에서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5개국과 협의를 한 결과 과잉 반응할 필요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며 "북한이 조속히 북·미간 협상에 돌아와, 원하는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가 되도록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이 문제로 상황을 파국으로 이끌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상황을 조속히 수습할 수 있도록 관련국들과 함께 노력하겠다는 것이 오늘 현재의 입장이며 행동 대 행동 원칙으로 2단계 조치가 마무리되고 이에 대한 상응 조치로 에너지 지원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국과 협의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북한이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고 나선 측면으로 이해하더라도 북핵문제가 당분간 교착상태를 지속하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상황이 더욱 복잡해졌고 이는 북한 내부의 기류가 반영된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 외무성 성명에 포함된“우리 해당기관들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라는 문구에서 유추해 볼 때 북한 군부가 미국의 핵 사찰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고 연내 북핵 사태 진전은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또 북한이 미 대선 정국에서 서둘러 밑지는 장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시기적으로 볼 때 베이징 올림픽을 치르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 대한 고려가 작용했다는 시각과 함께 반면에 북핵 문제에 대한 한·중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이 북한 신경을 건드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이에따라 북한이 상황을 파국으로까지 끌고 가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올해안에 북핵문제에 진전을 기대하던 우리 정부와 미국의 계획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