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재테크)꿩 잡는 게 매

  • 등록 2007-11-01 오후 3:54:16

    수정 2007-11-01 오후 3:54:16

[이데일리 이상진 칼럼니스트] 2차 세계 대전 때 유명한 일화가 있다. 처칠 영국 수상이 대 국민 방송을 해야 하는데 회의가 길어지는 바람에 늦게 생겼다. 황급히 택시를 잡아 방송국으로 빨리 가자고 하니 운전사 왈, 곧 처칠 수상의 방송이 나올 예정이라 움직일 수 없다는 것. 내심 흐뭇했지만 방송은 해야겠고 처칠이 운전사에게 ‘따불(double)로 줄 테니 빨리 갑시다’라고 점잖은(?) 제안을 했다. 그러자 운전사 하는 말’ 그럽시다. 처칠인지 나발인지 안 들어도 그만이지 뭐’. 역시 돈이 최고다.

▲ 이상진 신영투신운용 부사장
요즘 시장은 ‘꿩 잡는 게 매’라는 분위기다. 지난 몇 년 사이 배운 것도 있고 들은 것도 있어 자산을 적절하게 배분해서 장기로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투자가들도 몇 개월 사이 특정 나라나 특정 종목을 집중 투자해 수익률이 고공행진을 하는 펀드를 보면 속이 편치 않다.
 
처음 한 두 달은 그런가 보다 하지만 대충 3개월을 넘어서면 인내심도 바닥에 이른다. 우리 펀드는 장기가치 투자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 기다리면 됩니다 라는 설명이 변명처럼 들린다.
 
워렌 버핏 정도 되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신다면 믿겠지만 길어봐야 십 년 내외인 한국의 가치 투자 전문 매니저(그래 봐야 손 꼽을 정도지만)는 웬지 어설프게(?) 보인다.

그리고 사실 단기에 고수익을 내주면 모든 투자가들이 행복하다. 막말로 가치 주식투자든 성장 주식 투자든 내 돈 불려주는 펀드가 최고지 하루가 급한 세상에 투자의 정석 등을 운운하면 별로 듣고 싶지 않다.
 
심지어 장기가치 투자로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한 워렌 버핏도 2000년대 초반 닷컴 회사들이 기승을 부릴 때 3년 정도 수익률이 매우 저조해 ‘이제 늙은 워렌 버핏이 한 물 갔다’는 소릴 들었다. 나름대로 장기투자가 정착되었다는 미국이 이럴진대 성질 급한(?) 배달 민족은 말할 나위가 없다.

또 사실 가치투자라는 것이 애매하다. 일반적으로 현재나 미래의 가치에 비해 시장가격이 현저히 낮은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가치투자인데, 현재의 가치는 대충 측정이 가능하지만 미래의 가치란 것은 부르기 나름이다.
 
당장 내년도 기업 수익이 세 배 네 배 늘어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게다가 원래 주식 가격은 일종의 미인대회와 같은 성격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미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미인대회에 우승을 한다.
 
PER 60배든 80배든 계속 올라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으면 주가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매 앞에 장사 없고 돈질 앞에 주가는 고공행진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왜 지난 100년의 긴 투자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철마다 뛰는 말을 잡아 고수익을 내는 펀드가 존재하지 못하고 시간과 지루한 싸움을 벌리는 가치투자 펀드만 살아 남았을까?
 
그건 바로 시장의 현명함 때문이다. 시장은 단기에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지만 장기로 갈수록 반드시 본질적 가치로 회귀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워렌 버핏은 벌써 쪽박을 찼을 것이다.
 
최근 한 가지 위안이 있다. 가치투자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투자가가 많아지고 있다. 불만이 팽배한다. 동 트기 전 어둠이 가장 짙다. 시장의 현명함을 믿는다. (이상진 신영투신운용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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