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유례없는 대규모 정전 사고가 지난주 목요일 뉴욕시 등 미 북동부 지역에서 발생했습니다. 뉴욕시는 거의 만하루를 전기 없이 지냈습니다. 전철과 기차가 멈췄고, 신호등도 꺼져버렸습니다. 정명수 뉴욕특파원이 지켜본 `전기없는 뉴욕`의 모습입니다.
뉴욕시 자체 인구는 800만명이 조금 안됩니다. 그러나 뉴저지와 코네티컷, 롱아일랜드 등에서 뉴욕시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을 생각해보면 초대형 도시, 뉴욕의 정전은 끔찍한 재앙이 분명합니다.
8월14일 오후 4시 쯤 시작된 정전은 거의 하루 동안 계속됐습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배짱 좋게 다음날 정상 거래를 강행하기도 했습니다.
대도시의 갑작스러운 정전은 약탈, 강도 등 범죄로 연결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나 이번 정전 사고때 약탈은 거의 무시할 정도였습니다. 뉴욕시 경찰국이 약탈 혐의로 체포한 범법자는 서른명이 안됐다고 합니다.
911 테러를 겪은 뉴욕시민들은 위기 상황에서 놀라운 질서의식을 보여줬습니다. 이같은 위기 대처 능력은 평소 훈련에서 나왔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정전 다음날 아침 "8월에 폭설이 내려서 교통이 마비됐다고 생각해달라. 꼭 필요한 인력이 아니면 집에 머물러 있으라"고 당부했습니다.
뉴욕의 겨울은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합니다. 지난 겨울은 특히 더했죠. 폭설때문에 교통이 마비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뉴욕 시민들은 사상 초유의 정전과 교통 대란을 `지난 겨울 눈보라` 때 처럼 침착하게 넘겼습니다.
금융기관들도 메뉴얼대로 벡업 시스템을 가동시켰고, 큰 탈없이 15일 증시 개장을 맞았습니다. 물론 거래가 100% 완벽하게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만 정전 사고의 규모를 생각하면 놀라운 대처 능력이죠.
위기 상황에 대비한 교통대책이나 벡업 시스템은 `단 한번의 위기`에 쓰기 위해 준비되는 것입니다. 이번 정전 사고로 뉴욕시는 수백만달러의 사고 대책비를 지출했을 겁니다. 뉴욕시 재정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걱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터지고 나서 수천만달러 아니 수억달러의 피해를 입고, 뒤늦게 처리하는 것보다 지금 수백만달러를 비용으로 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죠.
미국인들이 위기 상황에서 침착한 것은 시민의식이 높아서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싸게 먹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너도 나도 먼저 가겠다고 신호등 없는 교차로를 질주 한다면 사고가 날 것이 뻔하니까요. 그러면 아무도 집에 갈 수가 없죠.
백업 시스템을 만드는데 수십만 달러가 소요되지만 금융기관들은 아낌없이 백업 장비를 사들였고, 단 한번의 위기에 적절하게 써먹었습니다.
예상치 않은 `8월의 눈보라`를 어떻게 대비 하겠습니까. 그러나 `만분의 일`의 확률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미국식 위기관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