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돈으로는 돈을 못 번다`는 속설은 서민들에겐 하나 마나 한 소리입니다. 남의 돈을 빌릴 담보나 신용도 없고, 돈을 불릴 비법도 잘 모르니 로또 대박이 터지지 않는 한 부자되기는 `낙타 바늘구멍` 격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맨손으로 부자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지만 신용도 그저 그렇고, 재테크도 어두운 현대인들은 알게 모르게 `빚`에 훨씬 더 가까워졌습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 짧은 기간이지만 매달 빚을 지고 삽니다. 직장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마이너스 통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집을 사기 위해 좀 더 큰 돈을 오랫동안 빌리기도 합니다.
이른바 `빚을 권하고, 빚으로 소비하는` 시대가 펼쳐진 셈이죠. 그런데 우리의 생활 속에 빚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으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다 큰 위험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단적인 사례가 지난 2003년 한국의 카드 대란과 2007년판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아닌가 합니다.
정부와 기업(금융기관), 그리고 개인의 안이함이 삼박자로 맞아들면서 신용카드와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는 `괴물`로 탈바꿈 했습니다. 특히 미국은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선도적 위상을 점해왔기 때문에 미국發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은 세계 금융시장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미국의 모기지 부실과 한국의 카드대란은 엄밀히 따져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그 배경에 경쟁적으로 빚을 권하는 메커니즘이 자리잡고 있었고, 경제주체들의 `도덕적 해이`가 가세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점은 상당히 유사합니다.
미국도 바닥인 저축률과 만성적자 문제가 주택경기 호황으로 상쇄되며 소비와 내수를 이끌어내자, 모기지 시장의 하단부인 서브프라임에 거품이 끼는 것을 팔짱을 끼고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미국은 소비가 전체 경제의 3분의 2를 이끄는 대표적인 소비국입니다. 저금리 기조와 주택경기 호황이 이어지던 시절, 미국인들에게 주택은 일종의 현금지급기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축이라면 손사래를 치는 미국인들이 막상 자금수요가 생기면 고금리 모기지 대출을 저금리로 갈아타고, 주택가격 상승으로 높아진 담보여력을 활용해 추가 대출을 받음으로써 소비 자금을 마련했다는 것이죠.
금융기관들은 경쟁에서 이겨보겠다는 욕심 때문에 치명적인 독약을 매일 조금씩 먹은 꼴이 됐습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업체들은 보다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상대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자격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에게 예외규정을 남용하며 대출자금을 풀어줬습니다.
카드대란으로 많은 한국인들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했고, 모기지 사태로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은 거리로 나앉을 처지가 됐습니다. 도덕적 해이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득에 걸맞는 소비를 하기보다 미래의 빚을 끌어다 분에 넘치는 생활을 영위해 온 결과가 끝내 파국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죠.
한국은 카드대란으로 큰 교훈을 얻었지만 금세 잊은 듯 합니다. 올해 은행권이 적극적으로 카드 사업 확장 전략을 펴면서 출혈경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금융 리스크는 조금만 방심하면 곧바로 다른 영역으로 전파되고, 확대 재생산 됩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도 연쇄 충격을 불러오며 시장 곳곳을 전염시키고 있습니다.
전설적 투자자이자 세계 2위 갑부인 워렌 버핏의 주식투자 원칙 두 가지는 `손실을 보지 말라`와 `잊지 말라`입니다. 아주 기본적인 원칙이라 실망할 지도 모르겠지만 투자로 `현인`의 반열에 오른 이에게도 모든 것은 기본적인 원칙에서 출발합니다.
대란을 겪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심드렁한 우리 국민들과 대란위기에 직면한 미국인 모두가 다시 한번 되새겨야 봐야 할 `기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