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식용 금지' 그 후.. 52만 마리 '안락사 위기' 남은 개들 운명은

개식용 금지법 통과 후 보상안 갈등
남은 개 처분과 돌봄 지원책은 불투명
유기견에 의한 일반 시민 피해 가능성도 커
  • 등록 2024-01-22 오전 11:19:31

    수정 2024-01-22 오후 7:31:33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개 식용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길러온 자영업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중장년층 비율이 높은 개 농장 주인들은 남은 개를 돌볼 경제적 여유나 체력이 없어 개를 유기하거나 안락사시킬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과정에서 유기된 개가 일반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진= 정읍반려동물단체)
지난 21일 기자가 만난 개 농장 주인들은 법안 통과 후 남은 개들을 처분할 생각에 잠을 못 이룬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 19년째 개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손모(63)씨는 매일 하루에 12시간씩 아내와 둘이서 개 600마리를 돌본다. 다른 농장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손씨는 남은 개들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몰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금 시세로 개를 팔면 마리당 30만~40만원 남으니까 그나마 괜찮은데 내년이 되면 돈을 받고 처분할 길이 없다”며 “사는 사람은 없고 너도나도 출하하려고 하니까 가격 폭락이 뻔한데 뭐가 남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지난 9일 국회는 본회의에서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3년 뒤부터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도살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사육·증식·유통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된다. 개 사육 농장주와 개 식용 도축·유통상인, 식당 주인 등은 시설과 영업 내용을 지방자치단체장에 신고해야 하고, 국가나 지자체는 신고한 업자의 폐업·전업을 지원해야 한다.

문제는 고기값 하락이 점쳐지면서 안락사와 유기견이 늘어나리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개 농장은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매달 사료비와 난방비 등 농장 관리비로 수백만원이 든다. 손씨는 “우리도 지난달에 560만원은 나갔다”며 “3년 뒤 정부가 안 사가고 팔 곳도 없으면 개들을 키우기 어려우니까 안락사시키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충청도에서 부모님의 개농장을 물려받아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이모(33)씨도 “개농장은 고령인 분들이 많이 운영한다”며 “남은 개를 감당하지 못하면 안락사해야 하는데 이것도 돈이 들어서 개가 도망가도 그냥 두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연세가 많은 분들은 저리 융자를 지원받아도 축종을 바꾸려면 몇 억씩 필요해서 힘들 것”이라며 “정부가 정당한 보상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남은 개에 대한 정부의 보상안은 부실한 상황이다. 특별법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 사육 농장주, 도축업자, 유통업자, 음식점주 등이 전업했거나 폐업한 경우 시설자금과 운영자금 등을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한육견협회와 정부는 적정한 보상 수준과 방법, 남은 개의 돌봄문제를 두고 입장차이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2년 2월 기준 전국의 개 사육농가는 1100여 곳, 사육 마릿수는 52만여 마리에 달한다. 이 개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공보호시설은 전국에 239개소, 지자체의 민간 위탁시설은 150여 곳이 있다.

하지만 공공 돌봄·민간 위탁 시설에는 기존에 보호하던 개들이 있어서 계도 기간 이후 남은 개를 모두 수용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김도희 변호사(동물해방물결 해방정치연구소 소장)는 “그동안 개 농장 운영을 허가해온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행정처리에도 책임이 있다”며 “하위 법령을 마련하는 기간 동안 동물보호소 예산을 확충하고 민간시설과 협업해 남은 개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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