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대한민국에서 ‘난민 신청자’로 살아온 알렉스(35)씨는 무겁게 입을 떼었다. 난민 심사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조심스럽게 풀어놓은 그는 “안전함을 느끼며 살고 싶다”고 울먹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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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씨는 2012년 8월 고국인 예멘을 떠나 한국으로 왔다.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 가족들로부터 명예살인의 위협을 받아서다. 난민의 요건 중 하나는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어 ‘공포’를 느끼고 그 공포에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예컨대 알렉스씨처럼 종교 갈등 있는 나라에서 소수 종교를 믿는 신자는 다수 종교 신자들로부터 박해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 받는다.
난민 신청서를 접수하고 3~6개월마다 체류자격을 연장하며 심사 면접을 기다리던 알렉스씨는 청천벽력 같은 현실을 마주했다. 2014년 8월 본인의 난민 신청이 이미 몇 개월 전에 취소됐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그는 “제가 전화를 안 받아서 (난민 신청이) 취소됐다고 하더라”며 “찾아보니 출입국사무소에서 2014년 2월경에 2통의 전화가 와 있었다”고 말했다.
5년을 기다린 심사 면접은 30분도 되지 않아 끝났다. 알렉스씨는 “진술을 녹음하거나 녹화해달라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심사관은 내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말하는 걸 적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어렵게 받게 된 첫 난민인정 심사의 결과는 기각.
2017년 8월쯤 체류자격을 연장하기 위해 출입국사무소를 찾았으나 또 한 번 좌절했다. 그는 “당신의 난민신청은 이미 끝났다”며 “불인정 됐으니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알렉스씨는 “기각 이유는 ‘당신의 처지는 보호받을 상황이 아닙니다’라는 설명뿐이었다”고 말했다. 체류기간을 연장하지 못해 외국인등록증마저 철회됐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그는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알렉스씨처럼 출입국관리소의 부실한 심사 절차 운영과 안내 미비로 ‘난민 재신청자’가 되는 일은 다반사라는 게 인권위 설명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법무부는 난민 재신청자를 ‘남용적 난민 신청자’로 보고 제약을 준다”며 “반복적인 난민 신청으로 심사가 적체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난민 신청자에게 고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심사 과정도 충실히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난민 신청자들은 ‘내 사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작년 12월 난민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난민 불인정 결정에 대해 거듭 불복하는 것을 막아 난민심사 제도가 체류 연장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전문가들은 난민 재신청을 ‘남용적’으로 판단하기에 앞서 한 번이라도 제대로 심사받기 어려운 상황을 고쳐야 한다고 본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활동가는 “지금 한국은 난민 인정률이 너무 낮아 심사가 적체되는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1%의 난민만 인정되니 99%의 사람들이 계속 재신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재신청자에 대해 적격심사를 거쳐 면접의 기회도 부여하지 않겠다는 건 어떻게든 난민 심사 입구를 좁히려는 시도밖에 안된다”고 비판했다.
난민으로 지위를 인정받아 한국에 자리 잡으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하고 싶냐는 질문에 알렉스는 “난민으로 인정받으면 제 흰 머리가 안 자랄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농으로 분위기를 풀었지만, 이내 울먹이며 “이 사회의 일부로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라며 “그저 안전함을 느끼고 싶을 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