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에린 브로코비치'와 '환불남'

블랙컨슈머, 기업-소비자 뿐 아니라 사회 전반 악영향
블랙컨슈머 처벌 대책 마련해야
  • 등록 2011-01-31 오후 1:59:15

    수정 2011-01-31 오후 2:41:30

[이데일리 류의성 기자] 지난 2000년 개봉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 실화를 바탕으로, 대기업 PG&E와 맞서 싸우는 변호사 사무소 직원(에린 브로코비치, 줄리아 로버츠 扮)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PG&E 공장에서 유출되는 중금속이 주민들 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주인공. 본격 조사에 들어가면서 '거대기업에 맞서지 말라', '몸조심하라'는 등 갖은 협박에 시달렸지만 에린은 암으로 죽어가는 어린 아이의 눈을 보며 포기하지 않겠노라 결심한다.   에린은 유명 변호사들도 힘들 것이라고 단언했던 주민 634명 서명을 모두 받아낸다. 결국 대기업으로부터 3억달러가 넘는 보상금을 이끌어 냈다. 힘없는 사람을 위해 대기업들과 맞서는 에린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 환불남은 제2의 에린 브로코비치?   국내 네티즌들 사이에 `선량한 소비자를 위해 대기업과 싸우는 투사`로 비춰진 이가 있었다. 작년 5월 삼성전자 휴대폰이 충전중 폭발했다고 주장하며 국내 최대기업을 상대로 싸움을 시작한 `환불남` 이모씨.   경찰조사 결과 이씨가 휴대폰을 전자레인지에 집어넣어 일부러 폭발시킨 것이 드러났지만, 사실이 알려지지 전까지 이씨는 언론사 제보와 1인 시위, 유튜브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 "나는 애니콜 폭발 피해자"라며 투쟁을 벌여왔다.    그는 "삼성전자는 반소비자적 행태를 숨기고, 문제를 제기하는 개인 소비자의 권익을 짓밟기 위해 사법권력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고도 했다. 거대 기업의 압박 속에서 소비자들의 권리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는 투사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덧씌워졌다.   실망스럽게도(?) 그는 지난 25일 명예훼손과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자신의 투쟁이 자작극이라는 점도 자백했다. 이 씨는 2008년부터 8회에 걸쳐 노트북 등을 구입한 뒤 환불을 요구하고, 언론에 알리겠다며 1000만원 상당의 새 전자제품을 받아낸 `블랙 컨슈머`의 전형이었다. 제품과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영향력이 높아지고, 인터넷과 통신의 발달로 입소문이 빠르다는 점을 악용했다.     지난 2005년 미국에서 일어난 `웬디스 햄버거 손가락` 사건, 작년 12월 국내에서 발생한 `쥐식빵` 사건 등 블랙컨슈머 사기극은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불러왔다. 기업에게는 이미지와 영업 측면에서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고, 소비자에게는 불필요한 공포를 조장해 합리적 구매를 제한하는 결과를 불렀다. 사회적 비용 부담도 결코 적지 않았다.   ◇블랙컨슈머 피해 확산..선을 그어야 할 시점이 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008년 국내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우리 사회의 블랙컨슈머 문제는 도를 넘었다. 조사 대상기업의 87%가 과도한 보상 요구나 규정에 없는 환불 및 교체 요구 등 고객의 부당한 요구를 경험했다. 인터넷이나 언론 유포 압력, 폭언, 고소 및 고발 위협 등을 당했고, 실제 54%는 직간접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브랜드 이미지가 좋고, 소비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전자제품, 식음료 등은 블랙컨슈머들의 주요 표적. 최근엔 기업에 취업 청탁 등의 은밀한 거래를 제안하는 `생계형 블랙 컨슈머`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블랙컨슈머가 설치면 기업과 소비자 모두 불필요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기업이 지불하는 소송 비용은 오히려 사소하다. 사실 확인전까지 해당 물품과 관련 제품에 대한 판매차질, 애써 쌓아놓은 브랜드 이미지 훼손까지 감안하면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일부 기업들이 블랙컨슈머에 `진위여부를 차치하고` 우선 입막음부터 하려는 것은 일단 터지면 웬만한 기업 역량으로는 감당이 안되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 인터넷은 사회현상이나 뉴스에 대해 파급력과 휘발성이 높은 대신, 분별력과 통제력은 상대적으로 약한 공간이다. 블랙컨슈머들이 노리는 틈새도 바로 이 부분이다.   소비자들도 불이익을 당한다. 검은 소비자들이 많아지면 흰 소비자들이 물들고, 분위기까지 오염된다. 정당하고 필요한 고발, 놀거리와 먹거리에 대한 예방적 감시와 경고를 기업들은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상의 조사에서 기업들 십중팔구가 고객의 `부당한` 요구를 경험했다는 조사결과는 뒤집어 보면 소비자들을 대하는 기업들의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기업과 소비자가 서로를 불신하고, 인터넷의 통제 불가능을 탓하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소비자가 기업에게 어떤 요구와 대응을 해야 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이제 논의를 집중할 때가 됐다. 소비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가로막고, 기업활동을 방해하고,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나쁜 소비자들에 대해서는 선을 그어야 할 시점이다.   우리 사회에는 제2, 제3의 에린 브로코비치가 필요하다. 그같은 행위는 칭송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환불남에게 제2의 에린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잘못된 환상`을 남겨두는 사회가 돼서는 곤란하다. 정당한 소비자들의 권리가 보호받고 성장할 수 있도록, 블랙컨슈머의 싹을 미리 잘라줘야 한다. 나쁜 소비자들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은 기업과 소비자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 정부와 사법당국의 몫이 됐다. 에린의 싸움은 계속돼야 하지만 환불남의 싸움이 계속돼서는 안된다.

▶ 관련기사 ◀ ☞삼성전자, 환경부 녹색기업 지정 ☞삼성전자, 지경부 온실가스 관리업체 지정 ☞"갤럭시 플레이어, 미리 찜해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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