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미 기업사냥 잇단 좌절
지난달 19일 중국 최대 가전그룹 하이얼은 미국 가전업체 메이택 인수를 포기했다. 미국의 가전업체 월풀이 하이얼보다 높은 주당 17달러에 인수를 추진하면서 인수 의사를 철회한 것이다. 하이얼은 사모펀드들과 공동으로 주당 16달러에 메이택 인수를 추진해왔으며, 메이택 실사후 수주일내로 공식 인수제안을 제출할 계획이었다.
하이얼이 미 기업사냥 대열에서 이탈하면서 남은 관심은 CNOOC의 유노칼 인수 성사여부에 집중됐다. 그러나 중국의 국영 석유기업인 CNOOC 역시 미 의회의 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미국 9위 에너지기업 유노칼의 인수를 포기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유노칼도 CNOOC의 경쟁입찰 업체였던 미 기업 셰브론에 넘어가게 됐다.
지난해 중국의 PC 기업 레노보가 IBM PC 사업부문을 인수한 뒤 제기됐던 `신(新)황화론(黃禍論)`이 위기 의식을 자극하면서 중국 기업들의 추가적인 미 기업 인수를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황화론이란 황인종에 의한 백인종의 피해의식을 일컷는 말로 13세기 몽고의 유럽진출에서 유래, 근세에는 1940년대 일본의 진주만 공습과 80년대 일본의 미국 부동산 사재기 당시에 거론됐었다.
중국 기업들의 자국 기업 인수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은 자본의 세계화를 선도하는 국가와는 전혀 어울리지 모습이다. 지난 6월말 CNOOC가 185억달러에 유노칼 인수를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미 하원의 자원위원장은 "(CNOOC의 우노칼 인수가) 미국 국가안보에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면서 안보 위협론을 제기했다.
언론도 거들었다. 경제전문 주간지인 포브스는 중국기업들이 `천연자원`과 `세계적인 브랜드`를 노리고 미국 기업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 있다며 "미국 경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즈도 중국이 자본주의로의 전환에 큰 전기를 맞게 됐지만 "미국 기업을 인수하기가 수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도 CNOOC는 우노칼을 인수할 능력이 없다며 입을 모았다.
미 의회의 반대는 특히 적극적이었다. 지난달 25일 미 의회는 정부가 CNOOC의 유노칼 입찰을 승인하기에 앞서 에너지부, 국토안보부, 국방부 등 3개 정부기관으로부터 별도 조사를 받도록 하는 새 조치를 통과시켰다. 일부 의원들은 심지어 중국이 유노칼의 시추 및 음파탐지 기술을 군사적 목적에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노칼과 하이얼이 남긴 것
떠오르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심리는 비단 기업 인수문제에만 나타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미 수개월전부터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위안화 절상과 섬유쿼터 규제 등 중국에 대한 압박이 시작됐고, 이 같은 긴장관계는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특히 전방위적인 위안화 절상 압력을 통해 중국의 페그제 포기를 이끌어냈지만, 여전히 위안화 절상의 폭이 만족스럽지 않다며 미국측의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CNOOC와 하이얼의 미국 기업 인수 실패는 위안화 절상이나 섬유수출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통상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전망이다. 인수 과정에서 미 의회가 보인 적대적인 행동들은 중국에서의 사업 확대를 꾀하고 있는 미 기업들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 더불어 CNOOC의 지분 70%를 보유한 중국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불만을 표시할 것이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중국 기업의 미 기업 인수 시도가 끝날 것으로는 판단하기엔 일러 보인다. 지난달 21일 뉴욕타임스는 하이얼과 CNOOC가 미국 기업 인수에 실패하더라도 중국의 미 기업사냥은 계속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베이징 소재 그랜달 리갈 그룹의 제리 공 변호사는 "중국기업들의 인수 의지가 꺾이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일반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중국 기업들은 더욱 공격적으로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