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올해 국감에서는 외환시장 개입이 큰 이슈 중 하나입니다. 재경부가 파생상품까지 동원해서 환율을 방어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국익을 위해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요청까지 했는데요. 정명수 뉴욕 특파원은 진짜 국익이 뭔지, 우리 경제가 `수출`이라는 허상에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라고 합니다.
지난주에 한 후배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뉴욕 모 대학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는데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노모를 모셔야할 처지라 한국에서 직장을 구하는 모양인데 잘 안된 것 같았습니다. 술 한 잔 사달라고 해서, 해질녘 맨해튼 코리아타운으로 향했습니다.
후배는 자리에 앉자마자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왜 맨날 이 모양입니까? 남들은 경기가 피크를 지나가고 있다고 난린데, 우리는 아직도 바닥이니. 형은 기자니까 설명 좀 해보세요"
"신용카드 빚때문에 그런거 아냐. 좀 있음 나아지겠지. 그래도 수출로 버티고 있지 않냐."
"수출이라. 글쎄요, 수출하면 일자리가 생깁니까, 내수가 살아납니까? 기업들은 수출로 번 돈은 풀 생각도 안하고, 일자리 만들 생각도 없는데 수출에 목매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 정부는 경기 조절 능력이 있기나 한가요? 우리나라처럼 경기 변동이 심한 나라는 세상에 없을 거예요."
"어허. 지 못난 것은 생각 안하고, 취직 안된다고 남탓이냐."
"형도 생각해봐요. 세상이 달라졌는데, 우리 경제정책은 박통 시절이나, 전통 시절이나, 노통 시절이나 달라진게 무엇인가요? `수출만이 살 길이다` 외치면서 환율 방어해주는게 경기 대책인가요?"
"그만큼 우린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잖아."
"가진 것이 없다니? 새마을 운동 시절 얘기지.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 놓고 있는데 가진 것이 없다뇨."
"...."
"형도 여기서 살아보니, 우습지 않던가요.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줄창 수출해서 미국에 팔면, 미국 소비자들은 신나게 쓰고, 적자난 것은 국채 발행해서 메우고. 근데 그 국채를 일본, 중국, 한국이 수출해서 번 돈으로 다 사주고. 미국은 국채 팔아서 전쟁하고, 감세해서 경기 부양하고. 꿩먹고 알먹는 장사 아니유. 누구는 죽어라 수출만 하고, 누구는 죽어라 소비만 하고. 이상하지 않아요?
그래도 `수출로 버틴다`고 말하고 싶겠지. 그게 레드 콤플렉스 보다 더 무서운 `수출 이데올로기`라고. 우리 언론도 `수출마저 안되면 큰 일이다` 이러지. 근본적으로 수출에 매달리는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아요.
환율 방어해서 수출하면 누가 제일 득인가? 그리고 우리 수출이 반도체, 자동차, 핸드폰인데 그게 환율조정을 통한 가격 경쟁으로 될 상품들인가요?
좋아요. 수출 위해서 환율 좀 조작한다고 합시다. 그렇게 해서 늘어난 수출이 순수하게 얼마나 되는지, 그게 경기에 얼마나 도움됐는지, 계산이나 함 해보든지.
환율 방어에 들어간 돈으로 재정정책을 쓰면 승수효과로 내수가 얼마나 부양될 건지 비교해 보면 어떤 게 더 좋은 정책인지 알 수 있지 않나요."
"...."
"경제정책도 한계효용체감이 있는거지. 1960년대나 21세기나 어떻게 똑같은 정책을 구사할 수가 있죠? 지금이 `수출입국` 이런 주제로 글짓기나 하는 시댄가. 정책 효과가 떨어지면 다른 정책을 쓸 생각을 해야지. 맨날 틀에 박힌 일만 하면 그게 어디 정책인가요.
`Old Habits Die Hard`라고 경기 사이클을 습관적으로 수출로 대응하는게 문제 아닌가요. 이미 경제 체질이 달라졌는데 정책은 아직도 `잘 살아보세` 시절이야. 일단 수출이 되면 성장률 숫자는 맞출 수 있겠죠. 근데 그게 누구 좋으라고 하는 짓이죠. 성장률이 4%건, 6%건 일자리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일본도 수출로 버티면서 불황 빠져 나온거야. 미국도 수출 많이 한다."
"그렇지 일본도 수출로 버텼지. 그래서 10년 불황이었지. 기업은 부잔데, 국민은 가난했고.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건가? 미국도 수출하지, 그런데 미국이 수출 걱정하는거 한번도 본적이 없어요. 위안화 가지고 압력 넣지만, 그건 정치적인 쇼나 다름없지."
"...."
후배의 투덜거림을 다독거리면서 마음 한구석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자국 통화가치가 급변하는 것을 용납하지는 않습니다. 수출에 도움이 되도록 환율시장을 안정시키는 것도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내수가 죽어서 살아날 생각을 안하는데, 수출마저 꺾이면 큰 일 아닙니까.
그러나 이런 생각도 아집이나 독선일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혹 수출이라는 환상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예전처럼 수출만으로 만사가 해결되던 시대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경제규모가 커졌고 수출과 내수의 상관관계도 엷어졌지요.
예전엔 어느 한쪽이 잘되면 서서히 다른 쪽에도 긍정적 역할을 미치는 소위 "웃목 아랫목 효과"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기대하기 힘듭니다.
정책 당국자들도 애국한다는 심정으로 수출 장려책을 쓰고, 외환시장에도 개입했겠지만, 그것이 허상의 이데올로기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이념 대결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져다 준 것이 없듯이, 지금의 수출 장려책이 맹목적인 이데올로기로 변질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용지물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