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몬 바일스(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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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종종 어깨에 온 세상의 짐을 진 것처럼 느껴져…제길, 가끔은 힘들어. 하하. 올림픽은 장난이 아니거든.”
4피트 8인치(약 142cm)의 ‘미국 체조 여왕’ 시몬 바일스(24)가 25일(이하 현지시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적었다. 20세만 넘겨도 은퇴하는 일이 잦은 여자 기계체조에서 24살까지 정상을 지킨 그였지만 2020 도쿄올림픽에서 기권하기 이틀 전에 남긴 글을 복잡한 심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틀 뒤인 27일 바일스는 도쿄올림픽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에서 한 종목만 뛰고 남은 종목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가장 자신있는 주 종목 도마에 나섰다 13.766점으로 낮은 점수에 그친 뒤였다.
| 바일스의 기권으로 미국은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 은메달을 수상했다(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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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일스가 기권하면서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 금메달은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이 차지했다. 미국팀에는 은메달이 돌아갔다. 경기가 끝난 뒤 바일스는 기자회견에서 “그냥 뒷자리에 앉아서 마음을 가다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느꼈다”며 “바보같은 짓으로 부상당하기 싫어 한 발 물러섰다”고 기권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크게 스트레스받는 상황에 있게 되면 정신이 좀 나가게 된다”며 “나는 내 정신건강에 집중하고 내 건강과 안녕을 위험에 처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울먹였다.
각계는 심리적 압박을 받아온 바일스에 격려와 찬사를 쏟아냈다. CNN은 “GOAT에겐 더 많은 메달이 필요 없다”며 “이미 그는 올림픽 금메달 4개와 세계 챔피언 타이틀 19개가 있다”고 전했다. GOAT(Greatest Of All Time)은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뜻한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바일스가 받아야 할 것은 감사와 지지다. 여전히 GOAT”라는 트윗을 올렸다.
| 러시아 안젤리나 멜니코바 선수(왼쪽)가 시몬 바일스에게 축하받고 있다(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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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리스트인 전 미 체조선수 앨리 레이즈먼은 “바일스도 인간이다. 가끔 사람들은 그걸 잊는다”며 “얼마나 심한 압박이 있었을지 생각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응원했다. 전직 동료 로리 에르난데스는 “정말로 바일스가 자랑스럽다”고 했으며,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던 애덤 리폰도 “아주 많은 사랑을 보낸다.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고 했다.
바일스의 기권이 스포츠인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상기시켰다는 평가도 나온다. CNN은 “더 많은 메달이 있든 없든 바일스는 이미 역경을 극복했으며 정신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고 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스포츠에서의 치열한 경쟁 압력에 대한 질문을 다시금 상기했다”고 평가했다.
바일스가 ‘체조선수 265명 성폭행 사건’ 이후 처음 열린 올림픽에 참가했다는 사실도 주목된다. 바일스는 미시간주립대 체조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의 피해자 중 한 명으로, 지난 2018년 그의 범행을 폭로했다. 나사르는 30여년간 여자 체조선수 265명을 학대한 혐의로 175년형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