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3년 주기로 돌아오는 도서정가제 개정을 3개월 남짓 앞두고 지역서점은 벼랑 끝에 몰린 모양새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도서정가제 개선에 국민 여론을 더 반영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사실상 도서정가제의 할인율을 확대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에 밀리고 올해는 코로나19까지 겹친 동네서점에 가격 할인 압박까지 추가될 수 있는 상황이다. 출판계에서는 최소한의 안전망인 도서정가제를 사수하기 위해 공동대책회의를 구성해 문체부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출판계가 할인율 확대를 반대하는 이유는 대형·온라인 서점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없는 출판 생태계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 한 동네 책방 관계자는 “책 공급률은 변하지 않는데 할인율만 커지면 그 비용이 오롯이 작은 서점과 출판사에 전가된다”며 “지금도 힘없는 서점들은 차별적인 공급률에 힘든데 추가 할인까지 해야 하면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책 공급률은 출판사가 서점에 공급하는 책값을 정가와 비교해 표시한 비율이다. 예를 들어 정가가 1만원인 책을 서점에 6000원에 공급하면 공급률은 60%다. 즉 출판사에서 책을 들여오는 가격은 변하지 않는데 할인율만 더 커지면 그만큼 서점의 매출이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 임대료와 유통 등의 고정비용을 제해야 한다.
출판계에 따르면 현재 도서정가제 시행 전 대폭 할인을 감안해 온라인 서점에 더 낮은 공급률을 적용하던 관행이 이어지고 있어 동네서점은 애초에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출판사에서 직접 대량으로 책을 구매하는 온라인·대형 서점의 경우 평균 공급률은 60%내외다. 유통사를 거쳐 책을 구매하는 동네·독립 서점의 경우 공급률은 평균 65~70%수준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표준 공급률’ 제도가 있다. 일정한 공급률을 정해두고 서점마다 다른 할인 혜택을 주면 안되도록 막는 것이다. 한림출판사가 2015년부터 65% 표준 공급률을 도입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표준 공급률 도입에 대한 본격적 논의는 방치돼 왔다. 공급률은 출판사와 서점, 유통사 등 사인간의 계약이어서 법률로 강제해서는 안된다는 게 이유다. 이에 대해 출판계는 “도서정가제로 개인과의 책 거래 가격은 규제를 하면서 공급률에 대해서는 사인간의 계약이라는 주장은 이중 잣대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지난 5월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지역서점을 찾아 “지역 서점 대상 도서의 배송, 도서 공급률 인하에 기여할 수 있는 배송체계를 만들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 산업은 지식문화의 근간이다. 다양한 출판사·서점이 있어야 그만큼 많은 책을 독자들이 접할 수 있다. 지속적인 독서 인구 감소와 최근 코로나19라는 상황까지 맞이하면서 구석에 몰린 지역서점들의 한숨이 더 깊어지기 전에 전반적 출판 생태계 구조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문고가 더위를 피해 서점으로 몰린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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