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한상복기자] 시중자금이 대거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금융시장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정책당국으로선 난감한 일입니다. 과열을 해소하겠다는 부동산 대책이 오히려 투기를 부채질하는 형국이 빚어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자칫 처방을 잘못 썼다가는 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옵니다. 혼란스러운 양상입니다. 증권부 한상복 기자는 "이럴 때일수록 여유를 갖자"고 말합니다. 세상이 곧잘 물구나무를 서니까, 그 흐름을 면밀하게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 얘기를 들어보시지요.
모임에 갔더니, 표정이 어두운 친구가 있더군요. 신용카드회사에 다니는 동창입니다. 작년에 만났을 때는 환한 얼굴이었는데 말입니다. 이유는 익히 아실 겁니다. 호기있게 밥값을 계산하던 그 친구가, 이제는 `퇴직 걱정`을 해야 하는 신세로 몰렸습니다. 한참동안 푸념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의 어깨가 무겁게 보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 친구만의 일도 아닙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으니까요. 세상은 뜬금없이 물구나무를 섰고, 그럴 때마다 윗목이 아랫목 되고, 아랫목이 윗목이 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학창시절 성적이 우수했던 친구들이 가장 먼저 물구나무선 세상으로부터 피해를 입었습니다. 제가 학교를 졸업할 때, 가장 좋은 직장으로 꼽히던 곳은 종금사나 리스사였습니다. 성적이 좋은 모범생만이 이런 곳에 취업을 할 수 있었죠. 그런 동창들은 높은 연봉을 받았고, 기꺼이 친구들의 `봉`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그렇지만 97년 불어닥친 금융위기 이후 일제히 다른 직장을 찾아야 했습니다.
세상은 그동안 끊임없이 뒤집기를 반복한 것 같습니다. 70년대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던 은행이 IMF 시절 천덕꾸러기로 물구나무를 섰고, 80년대 수출역군 종합상사는 빈털터리 신세가 된지 오래입니다. 한때 `사윗감 1순위`라던 증권사 직원들도 어려워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서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거주지는 한적한 주택가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골목 안쪽에 호젓한 단독주택이 큰 인기였지요. 알부자들은 주로 이런 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런 골목주택을 선호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새벽마다 일어나서 차 빼기 바쁘니 말입니다.
저는 서울 변두리에서 태어나 줄곧 그 동네에서 살아왔습니다. 이사는 몇번 다녔습니다만, 동네 토박이라고 자처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가 변한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입니다. 한때 융성했던 상권이 초가집처럼 허물어지고, 황무지 땅에 대형 아파트와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섭니다.
과거에 부자들이 가장 많이 몰려 살던 곳은 서울 강북지역이었습니다. 성북동이나 한남동, 장충동 같은 곳이 `대한민국 부자 1번지`였지요. 물론 지금도 전통적 부자들은 이런 곳에 많이 삽니다. 그렇지만 밀집도를 기준으로 보면 강남지역에 자리를 내준 것으로 보입니다. 강남에서도 압구정동, 서초동, 청담동에 이어 대치동, 도곡동 일대가 신흥 부자촌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다음은 송파지역이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세상의 변화속도가 무섭습니다. 주식시장이 시원치 않은 가운데 부동산 열풍이 거세지만, 이같은 흐름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고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아랫목이 순식간에 윗목 되고, 윗목이 아랫목이 되었던 과거를 떠올려 봅시다. 가장 높은 수익률은 황무지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속에서 헤엄을 치는데 급급하면 강의 흐름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때로는 물 밖으로 나와 강이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여유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잠시라도 짬을 내어 헤엄쳐온 과정도 살펴보고, 강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 따져보는 것은 어떨지요. 세상이 급할수록 여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미리 내다본 큰 성공까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뒤에서 몰려온 거친 물살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정도의 효과는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