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8시30분(현지시간) 미국 노동부가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내놓은 직후 월가에서 쏟아진 목소리는 이렇게 요약된다. 근래 유가 하락에 인플레이션 정점론을 기대했지만,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고물가를 확인하면서다. 이번 인플레이션의 ‘실체’를 확인한 월가는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폭을 잇달아 상향 조정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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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떨어져도 CPI ‘고공행진’
이날 나온 지난달 CPI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기름값을 빼면 사실상 다 올랐다는 점이다. 지난달 CPI 상승률은 전월 대비 0.1%를 기록했다. 0.1% 하락했을 것이라는 월가의 전망을 웃돌았다.
예상대로 휘발유 가격이 한달 사이 무려 10.6% 떨어지는 등 에너지 부문은 5.0% 하락했다. 그러나 식료품(0.8%), 신차(0.8%), 의료서비스(0.8%), 교통서비스(0.5%) 등 식료품과 서비스는 이전보다 더 고공행진 했다. CPI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주거비 역시 0.7% 상승했다. 근래 인플레이션이 단지 유가 폭등에 따른 것은 아니라는 방증이다. 1년 전과 비교한 CPI 상승률은 8.3%로 시장 전망(8.0%)을 상회했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해 기조적인 물가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는 한 달 전보다 0.6% 뛰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망치는 0.3%였다.
금융시장은 곧바로 요동쳤다. 당장 연준의 긴축 강도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준이 이번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통해 100bp(1bp=0.01%포인트) 기준금리를 올릴 확률은 이날 오후 기준 38.0%까지 올랐다. 100bp 인상 울트라스텝 가능성은 전날까지만 해도 0%였는데, CPI 지표가 나오면서 새롭게 반영됐다. 40%에 육박하는 확률이면 무시해도 될 만한 소수의견은 아니라는 평가다.
실제 노무라는 이번달 연준의 인상 폭 전망치를 75bp에서 100bp로 공식 변경했다. 노무라는 “점점 고착화하는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서는 더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KPMG의 다이앤 스웡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번 CPI 보고서를 통해 확인된) 인플레이션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우려할 만한 것”이라며 “100bp 인상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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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 금리, 4.5% 혹은 그 이상”
세계적인 석학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이번 CPI 보고서를 확인한 직후 트위터를 통해 “2%의 물가 목표치로 회복하는데 약 4%의 연준 금리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아서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실업률이 4.5%를 넘지 않고 인플레이션이 2%로 떨어지는 것은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며 경기 침체 불가피론을 재차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당분간 변동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달러화 가치가 치솟는 ‘킹달러’가 장기화할 수 있다. 이날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지수화한 달러인덱스는 장중 110선을 돌파했다. 연준이 ‘매의 발톱’을 든다면 110선 위에서 고착화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나홀로 킹달러는 미국 외 다른 나라들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고 자본 유출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최대 화두로 꼽힌다.
미국 증시도 마찬가지다. 이날 뉴욕 증시의 3대 지수인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 나스닥 지수는 각각 3.94%, 4.32%, 5.16% 폭락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6월 11일 이후 2년3개월 만에 하루 기준 최대 폭 떨어졌다. 월가의 투자 전설로 불리는 아트 캐신 UBS 이사는 CNBC에 나와 “S&P 지수는 올해 6월 당시 최저치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증시 약세장은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US뱅크 자산운용의 테리 샌드벤 전략가는 “인플레이션의 완화가 주가 상승의 관건”이라며 “지금은 물가가 뜨거운 만큼 시장 변동성은 연말까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