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일본式 `글로벌 스탠다드`

  • 등록 2007-12-03 오후 4:42:09

    수정 2007-12-03 오후 4:42:09

[이데일리 김윤경기자] 외환 위기를 거치며 이제 우리 사회엔 성과주의가 상당히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평생 한 직장`이란 개념도 사라진 지 꽤 됐죠. 그러나 이웃나라 일본은 꼭 그렇지 않은 듯 합니다. 세계적인 흐름에서 완전히 비껴나 있을 수는 없지만 연공서열과 종신고용이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고 있다고 하는데요, 무엇이 다른 걸까요. 국제부 김윤경 기자가 전합니다.

나이와 먹은 밥그릇 수가 모든 가치를 앞서던 시절, 선배는 후배에게 위엄이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연공서열이란 가치가 붕괴된 지금은 능력과 실적이 최고의 가칩니다. 이 면에서 뛰어난 후배라면 선배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성과주의는 장유유서의 뿌리가 깊은 우리나라에서도 이젠 생소한 개념이 아닙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직원 1000명 이상 업체의 경우 60.9%가 성과주의 임금제인 연봉제를 시행하고 있고, 500명~999명 기업은 48.4%가 연봉제를 채택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어째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싶은 `명예퇴직`이란 말도 이제는 수시로 듣게 됐습니다. 평생직장이라뇨, 이제 사전에서나 볼 수 있는 개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사회는 외환 위기 이후 급속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렇게 변화했습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글로벌 스탠다드`.  마치 새마을 시대 구호처럼 파고 들며 이같은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우리의 무의식에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은 몹쓸 기득권인양 아로새기며 말이죠.
 
그런데 이에 비해 일본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일본의 기업 문화야말로 종신고용과 연공서열로 대표됐지만, 최근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겉 모양새는 이렇게 `글로벌`해지고 있지만, 속 사정은 꼭 그렇지도 않기 때문이죠. 
 
영국 이코노미스트(Economist)가 최신호 특집에서 바로 이를 다뤘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서구 자본주의로 변모하면서도 여전히 종신고용과 연공서열과 같은 가치를 대접하고 있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식 자본주의의 단물을 빨아들이되, 자국 문화와 접목시킨 `일본식 자본주의`가 영글고 있다고 할까요. 그걸 두고 잡지는 일본 기업들의 하이브리드(Hybrid) 모델, `재팽글로-색슨 자본주의(JapAnglo-Saxon capitalism)`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런던 킹스칼리지와 와세다 대학의 두 전문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723개 일본 기업 가운데 이런 하이브리드 모델을 채택하고 있는 곳이 24%였고, 42%는 전통적인 일본 기업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하이브리드 모델을 채택하고 있는 기업의 94%는 종신고용을 택하고 있다고 하네요. 42%에 해당하는 전통 기업들은 모조리 종신고용을 택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두 모델을 잘 접목시키고 있는 하이브리드 기업, 도요타와 NTT도코모, 캐논, 야마하, 히다치, 미츠비시 등이 더 나은 성과를 내고 있으며, 일본이 더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서구식 결론을 강조했지만, 제 결론은 달랐습니다.
 
자국의 사회 문화적 가치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글로벌을 지향하는 일본식 접근법이 새삼 놀라웠던 것이죠. 글쎄, 겉도 속도 다 내 준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자니, 정말 `일본스럽다`는 걸 느꼈다고나 할까요.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최근 서평 기사에서 봤던 한 책은 마침 일본식 연공제의 장점을 짚었다고 해서 주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동경대 경영학부 교수가 쓴 책인데요, 능력과 실적에 따라 일의 내용이 가속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일본식 연공제이며, 오히려 장기적 성과를 내기엔 이 제도가 더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하는군요.
 
경영자로선 인원과 각종 비용을 줄이면서 성과 위주 경영을 함으로써 효율성을 기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단기적으론 그럴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감축이란 선택을 위해선 분명 따로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있을 겁니다. 그게 많다면 효율적일 순 없겠지요. 
 
또한 성과주의를 완성시키기 위해선 객관적이면서도 공감을 불러 올 수 있는 평가 제도가 함께 마련되어야 할 겁니다. 기반이 잘 갖춰지지 않은 채 어설픈 하이브리드를 지향하기 보단 때론 차라리 뿌리깊은 사회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그런 면에서 과연 일본의 하이브리드 모델이 앞으로 더 어떻게 전개될 지도 궁금해지는군요. 더 서구식으로 나갈 지, 아니면 더 일본식을 고수할 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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