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개인회생 첫 개시결정..기구한 사연들

  • 등록 2004-10-12 오후 3:48:49

    수정 2004-10-12 오후 3:48:49

[edaily 문영재기자] "없는 살림에 열심히 돈을 모아 살려고 했지만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8년째 사법시험 준비를 하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해오다 1억원이 넘는 빚을 지고 법원에 개인회생제를 신청, 12일 개시결정을 받은 A모씨(39·여). 15년 가까이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던 A씨는 그동안 가계 생계를 혼자 책임져 왔다. A씨는 결혼 전부터 남편측이나 친정집 모두 집안 형편이 어려웠지만 남편이 사시에 합격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믿으며 보증금 500만원에 월35만원짜리 집에서 8살된 아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생계유지를 위해 사용했던 빚이 무려 1억1057만원. 은행, 카드사 등 채권금융회사만 16개에 달한다. A씨에겐 연체를 막기 위해 사용했던 카드 돌려막기가 화근이었다. A씨는 월평균수입이 211만원으로 생계비 126만원을 뺀 85만원씩 96개월 동안 원금을 갚겠다는 변제계획안을 제출, 최종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갚는다고 해도 2000만원이 남는다. 현재 남편은 고시공부를 접고 구직활동에 나섰다. 8년간 최저생계비만으로 살아가면서 나머지 소득으로 빚을 갚으면 원금까지 탕감될 수 있는 개인채무자회생제가 지난달 23일 시행된지 보름여가 지났다. 서울중앙지법 개인회생제 접수실과 변호사업계 등에는 서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봇물을 이루고 있어 서민들의 어려운 생활상을 반영해 주고 있다. 법원은 12일 A씨 등 채권관계 기재와 변제계획안 작성이 끝난 5명에 대해 개시결정을 내렸다. 어려서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19세 때 어머니마저 교통사고로 잃으며 동생과 단둘이 남았던 B씨(26·여)는 남자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학 때 만난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간호사로 일해왔지만 생활비와 동생의 학비로 썼던 카드빚 3700여만원이 끝내 발목을 잡았다. B씨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 시댁과는 연락조차 끊고 살았다"며 "카드로 생활비를 충당하다 보니 밀려오는 빚독촉으로 채무상환에 급급했다"고 하소연했다. 남편은 생활이 어려워지자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월100만 정도씩을 벌고 있다. B씨는 시아버지 사업실패 소식을 듣자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1000만원을 선뜻 내놓기도 했다. 남편과 2살난 유아가 있는 B씨는 개인빚이 총 3786만원이며 월평균수입이 186만원으로 생계비 91만원을 뺀 95만원씩 40개월간 원금을 변제하겠다는 안을 제출했다. 딱한 사정은 또 있다. 외환위기 전까지는 일반 중소기업에서 열심히 일하며 생활했던 C씨(30). IMF 구조조정으로 다니던 직장을 잃고 마이너스 통장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하면서 가계는 급속히 무너져 내렸다. 매일 걸려오는 채권추심업자들의 전화에 스트레스만 쌓여갔고 현금서비스 등 돌려막기를 했지만 결국 빚은 캐피탈사 등 2금융권으로까지 번졌다.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는 C씨는 담보·무담보채무 7000만여원의 빚을 지고 있으며 월평균수입이 168만원으로 생계비 55만원을 제외한 113만원씩 57개월동안 빚을 갚기로 했다. C씨는 "개인회생제도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짧게 말했다. 법원은 또 5000여만원의 개인채무가 있으면서 96개월동안 변제를 해 나가겠다고 밝힌 D씨(29·여)와 카드빚 등 모두 8600만원이 있으면서 67개월간 빚을 갚겠다고 한 E씨 (39·여) 등에게도 개시결정을 내렸다. 한편 개시결정이 내려졌다고 해서 곧바로 구제받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채권자들의 이의제기(2주∼2개월), 채권자 집회(2주∼1개월) 등 절차를 거쳐 최종 인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이번 첫 개시결정이 내려진 5명의 채무자들은 올 12월중이나 내년 1월께 변제계획의 인가여부가 나와 개인회생제 첫 대상자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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