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트립 in 정기영 기자] 물결 잔잔한 밤바다 앞. 얼굴을 살짝 스치는 살랑거림이 귀에 간지를 무렵, 어쩐지 없던 낭만도 생길 것 같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이 바다는 일정 간격으로 놓인 조명 하나하나에도 이야기가 담길 것 같은 곳, 전라남도 여수다. 한 때는 세계 1위의 석유화학단지로 밤낮 가리지 않고 불이 켜졌던 곳이지만 이제는 느긋한 울림의 노랫말 한 구절로 명실상부한 남해의 대표 관광지가 되었다. 365개의 섬을 거느리며, 어떤 이에게는 섬 여행을 가기 위한 기착지가 되었지만 섬 여행만 다녀오기에는 어쩐지 2%의 아쉬움이 남는다. 사부작사부작 느린 걸음 도시 여행으로 낭만 도시라는 여수 여행의 모자람을 채워 본다.
역사적으로 여수는 조선 시대에 경상, 전라, 충청을 말하는 3도 수군 통제영이 설치되었을 정도로 전라도 해안 방어의 중심지였다. 그래서인지 여수 시내에는 좌수영과 관련된 여러 곳이 옛것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적인 것들과 어울려 있어 역사와 문화의 동시 여행이 가능하다. 여수 연안여객선 터미널을 뒤로하고 바닷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중앙동 로터리 앞 이순신 광장에 도착한다. 광장에는 거북선의 실제 크기로 복원한 전라좌수영 거북선에는 당시 수군의 흔적들과 배 안에서의 생활상 등을 볼 수 있다. 이순신 광장에서는 매년 5월이면 호국정신을 기리고, 전통 예술을 계승시키는 목적으로 ‘여수 거북선 축제’가 열린다. 올해로 53회를 맞이한 거북선 축제는 길놀이를 시작으로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되어 해마다 그 열기가 뜨겁게 올라 문화관광 축제로서의 한 축을 이룬다.
여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중앙동 언덕에는 국보 제304호로 지정된 진남관이 자리한다. 조선조 삼도수군통제사 이시언이 전라좌수영 객사의 주사로 지은 건물로 한 때는 완전히 소실되었던 것을 조선 후기 전라좌수사 이제면이 재건하며 오늘에 이른다. 역대 임금의 궐패를 봉안하고, 국경일이나 나라의 제사 때 관민이 모여 봉도식을 올렸던 곳이었지만 일제시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는 학교 교실로도 사용이 되었었다. 막힌 것 없이 통간으로 개방된 기둥에서는 시원함과 여유가 돋보이며 현존하는 군사용 목조건축물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만 현존하는 군사용 목조건축물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진남관에서 좌수영 다리를 건너면 고소동 천사벽화골목이다. 고소동은 여수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부락으로 이곳에서는 바다와 돌산대교, 거북선대교가 한 눈에 들어온다. 고소대는 임진왜란 당시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작전을 세우고 명령을 내리던 곳으로 이를 기념해 좌수영대첩비와 타루비가 있다. 전망 쉼터에서는 잠시 숨을 고르며 여수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어 좋다. 시간이나 국가의 위급 사항을 소리로 알려주던 오포대는 이곳의 볼거리 중 하나이다.
전형적인 달동네였던 고소동은 지난 2012년 여수 엑스포를 계기로 시와 주민들이 힘을 합쳐 좁고 어둡던 골목에 그림을 그려 전국의 벽화 명소 중 한 곳으로 자리 잡았다. 진남관부터 시작해 고소동 언덕과 여수 해양공원에 이르는 거리의 길이가 1004m로 천사벽화골목으로 불린다.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그림부터 시작해 해양, 역사, 문화를 주제로 그린 벽화는 이곳 여수의 특색을 고스란히 나타냈다. 골목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커피집도 여러 곳 있어 여수 바다를 즐기는데 한 몫을 한다.
벽화골목이 끝나는 곳에는 여수해양공원이 조성되어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나들이 장소가 되었다. 장군도와 돌산대교, 남해도, 아기섬을 마주하며, 대형 공연장이 있어 주말이면 젊은이들의 버스킹 공연이 더해져 눈과 귀가 즐거운 곳이다. 방파제 끝에는 조선을 최초로 유럽에 소개한 네덜란드인 하멜을 기념해 세운 하멜등대가 이곳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등대가 세워진 곳은 제주도에 표류해 전라좌수영으로 배치된 후 억류생활을 이어가다가 일본으로 탈출한 하멜이 조선을 떠난 곳이다. 가로등이 켜지면 돌산대교와 거북선대교, 하멜 등대에 불이 켜지며 노랫말에서 듣던 아름다운 여수 밤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는 여수 낭만밤바다펜션 리조트는 낭만포차거리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아 여행자들에게 인기인 곳이다. 리조트형 펜션으로 옥상에 하늘수영장이 있어 하늘과 바다를 맞닿아 수영이 가능하다. 아이들을 위한 키즈 용품과 보드 게임의 무료 대여를 할 수 있으며 공용 바비큐장에서는 인근 어시장에서 구매해온 해산물을 구워 먹을 수 있어 보는 바다와 먹는 바다가 동시에 만족된다. 전객실 오션뷰로 룸 안에서 일출을 볼 수 있어 일출 여행 숙소로도 좋다. 스파룸을 비롯해 온돌룸, 최대 10명까지 입실 가능한 패밀리룸까지 다양한 객실 타입으로 여행 동행자의 스타일에 따라 룸 선택의 폭이 넓다.
여수는 바다를 접한 지역이니만큼 풍부한 해산물로 차려진 먹거리가 유명하다. 막걸리를 발효시켜 만든 막걸리 식초를 넣어 무쳐 새콤달콤한 서대회는 무침으로도 먹지만, 대접에 밥을 넣어 비빔밥으로 만들어 먹어도 맛있다. 너무 맛있어서 샛서방(기둥서방)에게만 준다는 금풍생이 구이는 고약하게 생긴 것과는 달리 그 맛이 고소하며, 게장 백반집은 푸짐한 게장과 반찬으로 여행자들의 입을 행복하게 만든다. 터미널 근처 수산시장은 온갖 싱싱한 해산물과 건어물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선어회는 그 부드럽고 찰진 맛으로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데 여수 중앙시장이 으뜸이다. 뜨끈뜨끈한 짱뚱어탕은 진하고 고소한 풍미로 한여름 무더위에 지친 속을 달래주기에 그만이다.